소설
풍성한 책방 : 너무 시끄러운 고독
풍성한 그림
2021. 3. 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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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후밀 흐라발 142 문학동네
p9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 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히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p32
나는 카인처럼
이마에 표적을 지닌 채 걸어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어슬렁거리다가
그곳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나를 불러줄 수도 있었으련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문을 나서면서
나는 또 한 번 뒤돌아보았다.
초롱과 선로 변경 통제실의 불빛 속에서
아이들과 노인들의 형상이
어렴풋이 흔들리고 있었다.
p106
나는 새로운 삶에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더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밝혀내자
대거 자살을 감행한
그 모든 수도사들처럼,
그때까지 삶을 지탱해준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그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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