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풍성한 책방 : 읽다

풍성한 그림 2020. 11. 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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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219  문학동네

 

p29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겁니다.

 

p73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관용구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관용구는

길이 드문 시절에

만들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길을 내겠다

다리를 놔주겠다

선거 공약이 많았습니다.

길은 편리하지만 길을 내는 것은

돈이 많이 드는 귀한 일이었으니

책을 길에 비유했다는 것은

그렇게 귀한 것을 상대적으로

값싸게 구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잘 풀리지 않는

답답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책에서 구한 경험을

우리는 독자로서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길이

너무 많은 시대여서

우리는 오히려 여러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고심합니다. 자동차마다 달려 있는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의 지도가

그 역할을 대신 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에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예전처럼 근사하게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그래, 길이 있겠지.

그래서 뭐?’

같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p138

어떤 책들은

독자와 힘겨루기를 합니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독자의 자아는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인물과 생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런 인물과 사상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아니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p189

책은 네모난 종이로 되어 있고

시작과 끝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개개의 책을

하나의 독립적이고

완결적인 것으로

상상하고 합니다. 그러나

류슈나가 통찰했듯 책은

독립되어 있을지 몰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는

물이나 바다처럼 유동적입니다.

그것은 흘러 다니고 합쳐지고

나눠지고 인간의 내부를

가득 채우곤 합니다.

그러므로 독자가 된다는 것은

이야기의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을 받아 마실 수 있는

계약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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