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거 111 열화당
p7 자화상
모국어는
한 인간의 첫 번째 언어,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입을 통해
처음 듣게 되는 언어다. 그래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내가
묘사하려는 언어라는 생명체가
분명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아마
음성적 자궁이 있을 것이다.
p13 로자를 위한 선물
당신은 종종
내가 읽고 있는 글에 등장하고,
또 가끔은 내가 써 보려고
애쓰는 글에도 등장합니다.
그렇게 당신은 머리를 살짝 기울인 채
미소를 지으며 나의 작업에 동참하지요
그 어떤 책도 혹은
반복적으로 당신을 가두었던 감방들도
당신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p25 당돌함
고아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와 함께
어떤 특별한 기술도 익히게 된다.
그는 혼자 살아가는 프리랜서가 된다.
p29 넘어지는 기술에 관한 몇가지 노트
한 발 옆으로 물러나와
고래를 내밀기 전에는 당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보잘것없는 존재다. 그때 비로소
동료들이 갑자기 멈추고
놀라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 놀라움에 휩싸인 침묵 안에,
모국어가 지닌
이해 가능한 단어들이
모두 들어 있다.
p39 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
손님들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각자 접시에 놓인 음식에만 집중한다.
매일매일 서로의 고독을 직면하는 일을
혼자 고독을 견디는 일보다
더 힘들 것이다.
p53 깨어 있음에 관하여
털들이 움직이는 건
구름에 작용하는 압력 때문이
아니라 각각의 구름 안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어떤 운동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p59 만남의 장소
매일매일의 삶은 있지만
그걸 둘러싸고 있는 건 공백이고,
그 공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는
오늘 홀로 있다.
p63 라 라라라 라라라 라
고개를 들고 모자이크화 전체를 보면
보이는 거라고는
모두 미동도 없이 차분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작품은 끊임없이 회전하는 무언가의
일부인 것 같기도 하다.
p71 노래에 관한 몇 개의 노트
노래는 과거의 경험을 전한다.
하지만 그것이 불리고 있는 동안
노래는 현재를 채운다.
p97 은빛 조각
회색이 있던 자리의 색감도
더 편안해졌다. 지상에 있는
건물들의 사각형 창 하나 하나는
그대로 영혼이 된다.
p103 망각에 저항하는 법
정보들은 대부분 한때 정치라고 불리던
활동에 관한 것이지만,
정치는 이미 주식 거래인과
은행의 로비를 앞세운
전 세계적 투기 자본의 독재로
대체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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