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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책방풍성한책갈피 : 젊은 예술가의 초상 3장

by 풍성한 그림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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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민음사

 

 3

스티븐이 말이 없는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짙은 안개가 그의 마음을 감싸는 듯했다.

그는 그 안개가 걷히고

그 속에 숨어 있던 것이 나타날 때까지

멍한 심경으로 기다렸다.

그는 저녁을 먹었지만

아무 입맛도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

기름기가 잔뜩 발린 접시들을

식탁 위에 남겨둔 채,

그는 일어서서 창가로 가 혀끝으로

입에 끼인 음식 찌꺼기를 청소하거나

입술에 묻은 것을 핥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식후에 입을 핥은

짐승의 경지로 전락해 버린 셈이었다.

이젠 끝장이다, 라고 생각하니

희미한 공포의 빛이

그의 마음속 안개를 뚫기 시작했다.

그는 유리창에 얼굴을 기댄 채

어두워지고 있는 거리를 내다보았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런 것이 바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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