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찰스 디킨스 195 은행나무
밤 산책/
교회의 종이 울리면
한밤중 노숙자는 처음에 길동무가
자신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소리의 파동이
둥글게 퍼져나가면 무슨 소리인지
명확히 인지하기 시작하고,
그 후에도 계속 퍼져나가
(어떤 철학자의 암시처럼)
영원한 공간으로 퍼져가나,
착각은 바로 잡히며 고독감은 한층 깊어진다.
길을 잃다/
길을 잃은 아이가 느꼈던 비이성적인 공포가
지금도 그때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그때 차라리
사자가 지배하는 비좁고 번잡하고 불편한 거리가
아닌 북극에서 길을 잃었다면,
그 정도로 겁에 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 한동안 울고불고하며
거리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나 엉망이 된 자존심으로
어느 건물 앞마당에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계단에 걸터앉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채덤 조선소/
조선소를 한가롭게 돌아다니다 보면
조용하고 내성적인
조선소의 성격을 보여주는 증거를
사방에서 만나게 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사무실과 건물은
자신이 하는 일을 드러내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떠벌릴 가치도 없다는 듯
고루한 티를 내며 진중함이 엿보인다.
영국 밖에서는 결코 본 적이 없는 태도이다.
흰색 돌이 깔린 도로에는
가끔 망치 소리가 살짝 울릴 뿐,
아킬레스호라든지 망치질하는 인부를 백이십 명
(망치질하는 척하는 사람들도 포함하여)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톱밥이라든지 지저깨비를
실어오는 바람의 속삭임이 없다면,
아마 노를 만들고
수없이 움직여 톱질하는 사람들도
수 마일쯤 떨어져 있는 줄 알 것이다.
와핑 노역소/
그때 이 희망 없는 곳으로
불확실하지만
아기들 목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문득 이 피폐한 세상도
아예 피폐한 곳만은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처녀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아기였듯,
아기들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처녀처럼 자라게 될 것이다.
아무튼, 경계를 늦추지 않는
여감독과의 활기찬 발걸음과 시선은
나로 하여금 두 노부인(그들의 위엄은
아기들 목소리로 의해 더욱 흐트러졌다)을
지나 바로 붙어 있는 보육실로 향하게 했다.
동쪽의 작은 별/
어린이 병원은
과거 돛을 제조하던 공장 또는 창고 터에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대충 지어졌다.
바닥에는 물건을 올리고 내리는
트랩도어가 설치되어 있고,
마루 널빤지는 무거운 발과 하중을 이기지 못해
군데군데 튀어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불편하게 튀어나온 선반과 기둥,
허술한 계단 때문에
나는 병실로 가는 내내 당혹스러웠다.
병실은 통풍이 잘 되고 쾌적하며 깨끗했다.
서른일곱 개 침대마다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보였다.
영아와 유아들의 얼굴은
두세 세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굶주림 때문에 초췌하기 그지없었지만,
고통을 살짝 누그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추어 순찰기/
요사이 런던으로 통근하는 사람들치고,
뭔가 척추 질환 때문에 몸이 둘로 접힌 듯
구부러진 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쪽 옆으로 돌아가 있던 고개가
이제는 팔 뒤로 내려가다 못해
손목에 닿을락 말락 하는
여인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그녀의 지팡이와 숄,
바구니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는 길바닥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기에
손으로 더듬어 길을 걸어가고,
구걸도 하지 않으며,
걸음을 멈추는 법도 절대 없다.
마권판매소/
이 업종이 번창하는 것은,
사방에 정보를 알아내려고
두리번거리는 인간 당나귀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우울한 지표다.
더구나 그들의 엄청나게 많은 제자들 중
민첩한 젊은 신사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해도 셰익스피어라든지
어느 감상적인 허튼소리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가장 예리하게 지성을 추구하는 부류가
예언자들의 베팅 장부를 위한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죽음을 거래하다/
가장 이성적인 사람들이 판단하기에,
장례의식에 관한 영국인들의 행태가
분명 안타까울 지경에 이른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야만스러운 과시욕과
고비용의 관습이 무덤 위로
서서히 고개를 쳐든 것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가장 엄숙한 행사를
쓸데없이 거창하고
무의미한 의식과 부당한 빛,
과도한 낭비,
책임을 완전히 망각한
나쁜 사례와 결부 지어 인식하게 함으로써
고인을 추억할 때 불명예가 될 수 있고
유족에게는 엄청난 낭패를 안겨줄 수 있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성한책방소설 : 어둠의심장,조지프콘래드,휴머니스트 (1) | 2025.05.20 |
---|---|
풍성한책방 소설 :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에쿠니가오리,소담출판사 (2) | 2024.09.17 |
풍성한책방소설 : 백설공주살인사건,미나토가나에,재인 (1) | 2024.09.17 |
풍성한책방 소설 : 빨간머리피오,마르탱파주,문이당 (15) | 2024.07.15 |
풍성한책방 소설 : 행성어서점,김초엽,마음산책 (0) | 2024.05.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