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중심에는 누가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책
로맹 가리 420 문학과 지성
p9
끝났다.
빅서 해안은 텅 비어 있고,
나는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 누운 채로이다.
바다 안개가
사물들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수평선에는
돛대 하나 보이지 않고,
내 앞 바위 위엔
수천 마리 새들이 있다.
다른 바위엔 물개 일가가 있다.
아비 물개는 지치지도 않고
파도 위로 솟아오른다.
고기를 입에 물고, 번들거리며,
헌신적으로, 이따금 제비갈매기들이
너무도 가까이 내려앉아
나는 숨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내 오랜 욕망이 깨어 일어나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p90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러 번이 죽음의 놀이를 하였다.
마당에서 어떤 말다툼이 일어나
우리를 대립시키기만 하면,
혹은 아무런 표면적 이유가
없을 때에도 증오의 절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눈짓으로
도전장을 보낸 뒤
‘내기를 하기’ 위해
오 층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이 결투의 이상스러우리만치
절망적이고 그리고
동시에 영웅적인 성격은 분명,
한편이 완전히
자기 숙적의 처분에
맡겨진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등을 밀때에,
조금치라도 계산이
틀리거나 또는
나쁜 의도가 섞이게 되면
상대방은 오 층 아래로 떨어져
분명히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65
현실이
우리를 찍어 넘어뜨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현실에서 뇌관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완전히 만족스럽고
능란한 방법 말이다.
유머는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의 우정어린 동료였다.
진정으로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머 덕분이었다.
누구도 내게서
그 무기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p243
나는 때때로
적당한 시간에
어리석어질 줄 알지만, 그러나
살육이 적절한 해결책인 양 보이는
그 영광된
고지까지는 고양되지 못한다.
나는 항상 죽음이란
애석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왔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과한다는 것은
완전히 내 본성에 어긋난다.
억지로
애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p344
스무 명의 조종사들은
그가 마지막 폭발 때까지
그 위대한 프랑스 국가의 후렴구를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다른 외침들,
다른 도전들을 다 뒤덮는
바다소리에 싸여, 대양을 마주하고
이 글을 끄적대고 있는 지금
그 노래가 저절로
내 입술 위에 떠오르며,
나는 그렇게 과거를, 어떤 목소리를,
한 친구를 되살아나게 하려 애쓴다.
그러면 마침내
그는 살아 있는 몸으로
내 곁에서 웃으며 일어난다.
p397
나는 또
낙하산에 머리를 파묻고
오랫동안 비행장에
엎드려 있기도 하였다.
나의 그 끊임없는
우울과 내 피의 분노한 소란과
소생하고 이기고 극복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싸우면서,
지금도 나는 ‘그것’이
분명히 무엇인지 모른다.
아마도 인간적 상황이리라.
어쨌든 나는 더 이상
버림받은 자들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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