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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성한 책방 : 딸에 대하여

by 풍성한 그림 2020.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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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연령의 세여인의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 

 

김혜진   민음사

 

p37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심지어 통보하지 않는 것도 많다.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하는 것들이 딸애와

나 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난 매일 본다.

 

p83

가족계획의 구호처럼,

아들이 없는 어머니는 내심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을 기대한다.

그 딸이 공부를 잘한다면

더욱 그렇다.

아들이 부럽지 않을 만큼 사회적으로

성공한 딸, 그래서 여성으로서

결혼에도 성공한 딸을,

딸의 어머니는 바란다.

어머니에게 하나 있는 딸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남근적 딸이다.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 것 같아요.

우리 딸요.

그 애는 실컷 공부했으면 했어요.

대학도 가도 대학원도 가고 그러면

교수도 되고 좋은 신랑감도 만나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요.

우리 딸은 정말 바보예요.

요즘은 그 애를 생각하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요.

 

 

 

p37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심지어 통보하지 않는 것도 많다.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하는 것들이 딸애와

나 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난 매일 본다.

 

 

 

p96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자가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나도 분명한 그런 예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기댈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게

저 여자의 탓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이제 딸애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념해 버린 걸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 될까.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걸까.

 

p206

교사로 일했던 그녀는

그 일을 그만둔 후 교습소,

도배, 유치원 통학버스 운전,

보험 세일즈, 구내식당 일을 거쳐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일을 할수록 전문성을 인정받아

더 나은 조건, 더 나은 벌이를

기대할 수 있기는커녕

더 나쁜 조건과 낮은 벌이의 일을

전전할수 밖에 없는 화자에게

삶은 그저견뎌 내야 하는

너무도 길도 막막한 것이다.

화자는 이것이 늙음의 문제인지,

시대의 문제인지

궁금해하는데 여기엔

젠더의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녀가 교사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혼자서

딸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p96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자가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나도 분명한 그런 예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기댈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게

저 여자의 탓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이제 딸애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념해 버린 걸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 될까.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걸까.

 

p206

교사로 일했던 그녀는

그 일을 그만둔 후 교습소,

도배, 유치원 통학버스 운전,

보험 세일즈, 구내식당 일을 거쳐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일을 할수록 전문성을 인정받아

더 나은 조건, 더 나은 벌이를

기대할 수 있기는커녕

더 나쁜 조건과 낮은 벌이의 일을

전전할수 밖에 없는 화자에게

삶은 그저견뎌 내야 하는

너무도 길도 막막한 것이다.

화자는 이것이 늙음의 문제인지,

시대의 문제인지

궁금해하는데 여기엔

젠더의 문제가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녀가 교사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혼자서

딸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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