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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성한 책방 : 새벽의 약속

by 풍성한 그림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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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중심에는 누가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책

 

로맹 가리  420  문학과 지성

 

p9

끝났다.

빅서 해안은 텅 비어 있고,

나는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 누운 채로이다.

바다 안개가

사물들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수평선에는

돛대 하나 보이지 않고,

내 앞 바위 위엔

수천 마리 새들이 있다.

다른 바위엔 물개 일가가 있다.

아비 물개는 지치지도 않고

파도 위로 솟아오른다.

고기를 입에 물고, 번들거리며,

헌신적으로, 이따금 제비갈매기들이

너무도 가까이 내려앉아

나는 숨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내 오랜 욕망이 깨어 일어나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p90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러 번이 죽음의 놀이를 하였다.

마당에서 어떤 말다툼이 일어나

우리를 대립시키기만 하면,

혹은 아무런 표면적 이유가

없을 때에도 증오의 절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눈짓으로

도전장을 보낸 뒤

내기를 하기위해

오 층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이 결투의 이상스러우리만치

절망적이고 그리고

동시에 영웅적인 성격은 분명,

한편이 완전히

자기 숙적의 처분에

맡겨진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등을 밀때에,

조금치라도 계산이

틀리거나 또는

나쁜 의도가 섞이게 되면

상대방은 오 층 아래로 떨어져

분명히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65

현실이

우리를 찍어 넘어뜨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현실에서 뇌관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완전히 만족스럽고

능란한 방법 말이다.

유머는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의 우정어린 동료였다.

진정으로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머 덕분이었다.

누구도 내게서

그 무기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p243

나는 때때로

적당한 시간에

어리석어질 줄 알지만, 그러나

살육이 적절한 해결책인 양 보이는

그 영광된

고지까지는 고양되지 못한다.

나는 항상 죽음이란

애석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왔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과한다는 것은

완전히 내 본성에 어긋난다.

억지로

애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p344

스무 명의 조종사들은

그가 마지막 폭발 때까지

그 위대한 프랑스 국가의 후렴구를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다른 외침들,

다른 도전들을 다 뒤덮는

바다소리에 싸여, 대양을 마주하고

이 글을 끄적대고 있는 지금

그 노래가 저절로

내 입술 위에 떠오르며,

나는 그렇게 과거를, 어떤 목소리를,

한 친구를 되살아나게 하려 애쓴다.

그러면 마침내

그는 살아 있는 몸으로

내 곁에서 웃으며 일어난다.

 

p397

나는 또

낙하산에 머리를 파묻고

오랫동안 비행장에

엎드려 있기도 하였다.

나의 그 끊임없는

우울과 내 피의 분노한 소란과

소생하고 이기고 극복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싸우면서,

지금도 나는 그것

분명히 무엇인지 모른다.

아마도 인간적 상황이리라.

어쨌든 나는 더 이상

버림받은 자들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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