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애덤스 295 책세상
p53
이 특정 목요일,
지구 표면에 수 마일 위에 있는
전리층을 뚫고
무언가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그 무언가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개나 되는 거대하고
노랗고 두툼한 석판같이 생긴 물체로,
사무실 건물만큼이나 크고
새들처럼 조용했다. 그것들은
항성 솔sol(태양을 가리킨다-옮긴이주)이
내뿜는 전자기파는
광선을 쬐면서 편안히 비상했다.
이들은 때를 기다리며
무리 지어 준비하여 있었다.
p99
지구의 환영이 메슥거리는 정신을
어지럽게 헤엄쳐 다녔다.
그의 상상력으로는
지구 전체가 사라져버렸다는 충격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다.
그건 너무나 거대한 일이었다.
그는 부모님과 누이동생이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을 하며
감정선을 자극해봤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자신과 친했던
그 모든사람들을 생각해봤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p124
진짜 우주는 그들 아래에서
멀미를 하며 휘어져 멀어지고 있었다.
다양한 가짜 우주들이
산양들처럼 조용히 휙 지나쳐 갔다.
태초의 빛이 시공간을
젤리 덩어리라도 되는 듯이
사방으로 튀기면서 폭발했다.
시간은 만개하여 번성했고,
물질은 쪼그라들어 사라져갔다.
가장 높은 소수(素數)는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결합해
영원히 모습을 감추었다.
p167
거대한 우주선들이
이국적인 태양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은하계의 가장 먼 변방에서
모험과 보상을 추구했다.
그 시절, 정신은 용감했고,
위험은 더 컸으며,
남자들은 남자다웠고,
여자들은 여자다웠고,
알파 켄타우리의
작은 털복숭이 생물들은
알파 켄타우스의
작은 털복숭이 생물다웠다. 그리고
모두들 알려지지 않은 공포에
용감히 맞서 싸웠고,
위대한 공훈을 세웠으며,
이전에는 누구도 감히 분리하지 못했던
부정사를 과감하게 분리했다. 그리고
그렇게 제국은 서서히 번영해나갔다.
p172
칠흑같이 깜깜한 공간에서
갑자기
한 줄기 눈부신 빛이 눈을 찔렀다.
그 빛은 서서히 뻗어 올라오더니
가느다란 초승달 모양으로
양쪽으로 길게 펄쳐졌다. 그러더니
곧 빛의 용광로와도 같은
두 개의 태양이 나타나
검은 지평선을
하얀 불꽃으로 활활 태웠다.
맹렬한 빛의 화살들이
그들 아래에 있는
엷은 대기를 뚫고
줄무늬처럼 퍼져나갔다.
p197
그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은하계의
모든 성단의 그 모든 행성들 중에서
재미있고 이국적이고
생기가 펄펄 끓는
그 많고 많은 장소들 중에서,
더구나 십오 년간의 난파 생활 끝에
하필이면 왜 이런
초라한 곳에 와야만 했을까?
하다못해 핫도그 가두 판매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차가운 흙 한 줌을 쥐어보았지만,
그 아래에는 몇천 광년을 여행해와
구경할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p224
사실 그것은 무한대가 아니었다.
무한대는 납작하고
재미없게 생겼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실은 무한대를 들여 다도는 것이다.
거리는 측량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
비행차가 모습을 드러낸 방은
절대로 무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아주,
아주 큰, 너무 커서
진짜 무한대보다도
더 무한대 같아 보이는 방이었다.
p267
잘못 내뱉은 말 한마디로
수많은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문제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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