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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성한 책방 : 이반 데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by 풍성한 그림 202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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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 223 민음사

 

p38

화공이 슈호프의 겉옷 위에

〈췌-854〉라고

번호를 새로 써준다.

슈호프는 앞섶을 여밀 새도 없이

허리띠로 쓰이는 노끈을 들고

자기 반원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금세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슈호프는 자기 반원인

체자리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도

파이프에 담은 것이 아니라

궐련을 피우고 있다. 그렇다면,

한 모금 얻어 피울 수도 있다.

그러나 슈호프는

직접 청하지는 못하고,

그의 옆에 바짝 다가서서

약간 등을 돌리고는

곁눈질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

 

p95

이제, 죽을 먹는 이 순간부터는

온 신경을 먹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얇은 그릇의 밑바닥을

싹싹 긁어서 조심스럽게

입속에 넣은 다음, 혀를 굴려서

조심스레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어야 한다. 그러나, 파블로에게

죽그릇이 벌써 비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한 그릇을 더 배당받기

위해서는 오늘만은 좀 서두를

필요가 있다. 게다가

두 에스토니아인과 같이 들어온

저 페추코프 녀석은 두 그릇을 더

타냈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파블로 맞은편에 서서

자기 죽그릇을 비우며,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네 그릇의 귀리죽

임자가 누가 될 것인가 하고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p165

슈호프는 구내로

돌아올 때부터, 오늘 저녁은 왠지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침대 위에 놓인 매트들도

뒤진 흔적이 없다.

오늘은 낮에

막사 안을 검사하는 행사가

없었던 모양이다. 슈호프는

겉옷을 벗어젖히면서,

자기 침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슈호프는

겉옷을 휙 던지고, 줄칼이 들어 있는

장갑도 벗어던지고는

서둘러 매트 속을 깊숙이 더듬어본다.

아침에 숨겨둔 빵이 그대로 있다.

실로 꿰매둔 일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p204

처음에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는

아주 애타게 자유를 갈망했다.

밤마다 

앞으로 남은 날짜를 세어보곤 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난 후에는,

이젠 그것마저도 싫증이 났다.

그다음에는 형기가 끝나더라도

어차피 집에는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유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형지에서의 생활이

과연, 이곳에서의 생활보다 더

나을지 어떨지 그것도

그는 잘 모르는 일이다.

슈호프가 자유를 그리워한 것은

오직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단 한 가지 희망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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