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 142 문학동네
p19
한참 후에야
아버지가 그 시절에
몇몇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얼마 후
어떤 사람들의 회고담 속에
그런 이름들이 나오면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이름이란 결국
그 이름을 지닌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마치 아득히 멀리 떨어진 별들처럼
우리의 상상 속에 빛나는 법이다.
p55
1957~1958년 그 기간에
아버지의 또 다른 하수인인
자크 샤티용이라는 사람이
모습을 보인다.
나 한테 보내 편지에서 그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썼다.
“네 아버지가 외롭게 죽는다 해도
절망하지 마라.
고독을 싫어하지 않는 분이니까.
네 아버지는 상상력이
–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로지 사업으로만 쏠린 –
무척 풍부한 양반인 데다, 그런
상상력을 공들여 키우시거든, 그리고
상상력이 그 양반이 정신에
양분이 되기도 하고 말이야.
언제나 자신이 쌓아올린 것과
‘공모’하고 있어서
한 번도 외로운 걸 몰랐단다.
그런 까닭에 야릇하고
또 무척이나 사람을
당혹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띠었지.
네 아버지는 모든 것에,
심지어 자신이 매달리지 않는
것에도 호기심을 가진 분이다.”
p90
아버지는 딱 한번
학교로 날 찾아왔었다.
교장선생님이 입구 현관에서
아버지를 기다려도 된다고 허락했다.
교장은 아도니스 델포스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기 현관 아래로
아버지의 실루엣이 어른거리지만,
마치 중세 수도원과 같은 배경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져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분간하지 못한다.
머리 없는 키 큰 남자의 실루엣.
그때 면회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우리의 만남이 2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쓰이던 방이나
혹은 연회실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 단둘이 서로 마주 보며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학교 교문까지 마중했다.
아버지는 팡테옹 광장으로 멀어져갔다.
어느날, 아버지는
자신도 열여덟 살 때는
에콜 가가 있는 동네를
자주 드나들었노라고 털어놓았다.
아버지에게는 식사대용으로
뒤퐁라탱 카페에서 크루아상 몇 개와
카페오레 한 잔을 마실 돈만 있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결핵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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