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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171 제철소
p33
소맥을 말 때
숟가락으로 유리잔의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는 유난스러워서 싫지만,
젓가락으로 아랫술을 윗술 쪽으로
휘젓는 소리는 좋다.
샴페인 뚜껑이 펑 하고
날아가는 소리는 무서워서 싫지만,
잔에 따라진 샴페인에서 기포가
보글대며 힘차게 움직이는 소리는 좋다.
축구를 하고 난 후
목이 탄 축구팀 언니들이 여기저기서
다급하게 맥주 캔 따는 소리는
그렇게 경쾌할 수 없고,
단숨에 들이켜지는 맥주가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는
그렇게 호쾌할 수가 없다.
p80
한 인간으로서 나름
매일매일 실존적 불안과 싸우고 있으며
누군가의 소중한
관계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존재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흔적을 봐버리면
필요 이상의 사적인 감정과
알 수 없는 책임감 비슷한 감정이
생겨 곤란하다.
p90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가지 않은 미래가 모여
만들어진 현재가 나는 마음에 드니까.
p107
살다 보면 가끔 욕이 아닌
다른 언어로는 설명할 수도,
그 느낌을 살릴 수도 없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 누군가 던지는 찰기 도는
다부진 욕 한 방이 가져오는
카타르시스는 화려하고 청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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