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199 민음사
키친
p30
방 한구석에서 숨쉬며 살아 있는,
밀려오는 그 소름끼치는 고적함,
어린애와 노인네가
애써 명랑하게 생활해도
메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나는 누가 가르쳐주기 않았는데도
일찌감치 깨닫고 말았다.
만월
p 65
열쇠를 짤랑거리며
별하늘 아래를 걷고 있자니,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하였다.
길도 발치도,
잠잠히 가라앉은 건물도
모두 뜨겁고 뒤틀려 보였다.
숨이 콱 막혀, 괴로웠다.
그래서 열심히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셔 보았지만,
가슴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가늘게만 느껴졌다.
눈동자 깊이 숨어 있는 뾰족한 것이
바람에 드러나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p77
어째서 나는 이토록이나 부
엌을 사랑하는 것일까.
이상한 일이다.
호의 기억에 각인된
먼 옛날의 동경처럼 사랑스럽다.
여기에 서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무언가가 다시 돌아온다.
p124
사람이란
상황이나 외부의 힘에
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 때문에
지는 것이다. 이 무력감,
지금 그야말로
바로 눈앞에서 끝내고 싶지 않은 것이
끝나가고 있는데,
조금도 초조하거나 슬퍼할 수 없다.
한없이 어두울 뿐이다.
달빛 그림자
p146
무엇보다 밤이면 잠들기가 무서웠다.
아니 눈뜰 때의 충격이
감당할 수 없었다.
퍼뜩 눈을 뜨고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 때의 깊은 어둠에 떨었다.
p178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내가 뭔지를 모를 엄청나고
거대한 것과 싸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쩌면 내가 질지도 모른다고,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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