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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성한 책방 : 키친

by 풍성한 그림 202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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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199   민음사

 

키친

p30

방 한구석에서 숨쉬며 살아 있는,

밀려오는 그 소름끼치는 고적함,

어린애와 노인네가

애써 명랑하게 생활해도

메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나는 누가 가르쳐주기 않았는데도

일찌감치 깨닫고 말았다.

 

만월

p 65

열쇠를 짤랑거리며

별하늘 아래를 걷고 있자니,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하였다.

길도 발치도,

잠잠히 가라앉은 건물도

모두 뜨겁고 뒤틀려 보였다.

숨이 콱 막혀, 괴로웠다.

그래서 열심히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셔 보았지만,

가슴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가늘게만 느껴졌다.

눈동자 깊이 숨어 있는 뾰족한 것이

바람에 드러나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p77

어째서 나는 이토록이나 부

엌을 사랑하는 것일까.

이상한 일이다.

호의 기억에 각인된

먼 옛날의 동경처럼 사랑스럽다.

여기에 서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무언가가 다시 돌아온다.

 

p124

사람이란

상황이나 외부의 힘에

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 때문에

지는 것이다. 이 무력감,

지금 그야말로

바로 눈앞에서 끝내고 싶지 않은 것이

끝나가고 있는데,

조금도 초조하거나 슬퍼할 수 없다.

한없이 어두울 뿐이다.

 

 

 

 

달빛 그림자

p146

무엇보다 밤이면 잠들기가 무서웠다.

아니 눈뜰 때의 충격이

감당할 수 없었다.

퍼뜩 눈을 뜨고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 때의 깊은 어둠에 떨었다.

 

p178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내가 뭔지를 모를 엄청나고

거대한 것과 싸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쩌면 내가 질지도 모른다고,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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