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세풀베다 160 열린책들
p19
푼타 아레나스는
브룬스윅 반도의 서쪽 해안에
돌출 한 곳이었다. 한편,
그 너비가 대략 20마일에 이르는
마젤란 해협 반대편은
티에라 델 푸에고가 시작되고,
그곳에서 조금 더 남쪽에는
폭이 무려 70마일이나 되는
이누틸 만이 해협 안쪽으로
호수 형태를 띠고 있다.
p24
산티아고에서
반복된 일과로 방학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을 떠올렸다.
~ 나는
채 2주일도 지나지 않는 기간에
선원 생활도 해보았고
손바닥에 못이 박였지만
마젤란 해협을 통과했으며,
그 덕분에 돈도 벌어
지구 끝 세계에서
이렇게 양고기를 뜯고 있지않는가.
p34
〈에반헬리스타 호〉가
출항한 것은
먼동이 틀 무렵이었다.
p36
배에서 본 나무등걸 형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배에서 보았던 것은
화석화된 나무 기둥이 아니라
자갈과 조개껍질이 널려진 해변에서
말끔하게 처리된
수백마리에 달하는 고래들의
잔해였다.
p43
고래의 해체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부위는
소금에 절여져
여전히 드럼통에 들어갔지만,
나머지 필요 없는 부위는
여전히 살점이 붙은 뼈와 함께
해변에 버려지면서
런던데리 섬의 유령 같은
풍경의 일부분으로 변했다.
p57
1987년의 일이었다.
당시 일본은 국제 포경 협회 총회에서
투표 시각을 앞두고 갑자기 불참하더니,
〈학술연구〉라는 명목을 내세워
남극해에서 3백 마리의
난장이고래를
포획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했다.
p70
거친 바다와 세월이
배를 고철 덩어리로 만들면 선주는
그 배를 뭍에서는 삶을 거부하는
고령의 선장들에게 팔아넘기는데,
그 순간부터 배의 운명은
180도로 바뀌게 된다.
이전까지 정기적으로
화물을 싣던 배는
최소 인원의 승무원들과 함께
가장 못사는 나라들의 깃발을 단 채
여러 항구를 찾아 돌아다니는
트램프 스티머,
즉 부정기 화물선으로 변하는 것이다.
p82
일본이란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7개국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시장 경제에 의해 지배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이면서도
유일무이하게
해적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p92
우리는 말없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침묵은 때때로
가장 좋은 대화 방법이다. ~
여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p107
멀리서 불법 포획과 가공 과정을
지켜보는 두 사람의 눈에는
해상 가공선이야말로
인간이 발명한
가장 소름끼치는
발명품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 배는 고기를 좇는 게 아니라
오로지 강대국들의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애당초 바다의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문명의 이기였다.
p118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나는 갑판으로 올라갔다.
눈앞은 섬들의 윤곽조차
알아보기 힘들 만큼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지만
세 사람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한 표정으로
마테차를 마시고 있었다.
p135
활짝 개인 하늘,
그 아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낮은 구릉과 담수호와
개울과 숲 그리고 어쩌면
카카푸에고 호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동굴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어둠이 일찍 찾아 든
밤의 풍경 앞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마치 구름처럼
밤하늘을 뒤덮고 있는
무수한 별들이 타이타오 반도를
병풍처럼 가로막는
산 발렌틴만년설과
빙벽에 반사되는
장면 또한 잊을 수 없었다.
p148
모든 사람이
듣거나 들었다고 생각하는 부름을,
혹은 깊은 고독이
즉흥적으로 불러낸 부름을
지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있었다.
나는 잔잔하면서도
꿈틀거림을 멈추지 않는
고요의 바다에, 인간이
허망하고 나약한 존재임을
증언하는 무수한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 밑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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