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331 열린책들 2018.11
p13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결과에는 그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적어도 사람들 말은 그렇다.
기적은 없다고 치자.
하느님이 내 샤워기에서
물이 새는 것을 보고
걱정하실 이유는 없다.
홍해의 기적을 일으키신 하느님이
어찌 샤워기 따위에 신경을 쓰시랴.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결과에는
자연스러운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어젯밤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물 한 컵을 받아서 수면을 유도하는
스틸녹스를 한 알 먹었다.
말하자면 그때까지는
물이 아직 나오고 있었다는 얘기다.
p88
이날 편집 회의의 또 다른 주제는
반박에 대처하는 방안이었다.
『도마니』는
아직 독자가 없는 신문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뉴스를 싣는다 해도
그것을 놓고 반박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신문이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반박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특히 썩은 것에 손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문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반박을 하는 독자들이
진짜로 나타날 날에 대비해서
훈련을 할 겸,
우리는 독자들이 보낸
몇 통의 편지를 지어내고
그 편지들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
반박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발행인에게 보여 주자는 뜻도 있었다.
p139
그 주에는 일이 쉬엄쉬엄 진행되었다.
누구도 일에
큰 욕심을 내는 것 같지 않았다.
시메이도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1년에 걸쳐 12호를 내는 것은
나날이 1호를 내는 것과
같을 리가 없었다.
나는 기자들이 처음으로 제출한
초고들을 읽으면서
문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너무 멋을 부린 표현들을
담백하게 고쳤다.
시메이는 내 작업을 승인했다.
「여러분, 우리는 저널리즘을 하는 거지
문학을 하는 게 아닙니다.」
p209
나는 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브라가도초에게, 그리고
그가 미친 듯이 신명을 내며 소개하는
그 주검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건 19세기 소설을 읽을 때,
이야기에 빠져
소설 속 뱀의 눈길에 홀리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p272
정보부와 연결된 사람들은
입을 다무는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일세.
걱정하지 말게.
반박할 수 없는 다른 증거들을
모으기 위해서 며칠이 더 필요해.
정말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일세.
그런 다음 시메이를 만나서
내가 조사한 결과를 알려 줄 거야.
창간 예비 판 0-1호부터
0-12호까지 연재할 수 있도록
기사를 준비할 생각이라네.
정치, 풍자, 죽음, 기자,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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