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평 263 창비 2021/1
p29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p90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생각해보면
할멈이 엄마에게 바란 것도
평범함이었을지 모르겠다.
엄마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박사의 말대로 평범하다는 건
까다로운 단어다.
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을
하찮게 여기고
쉽게 입에 올리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게는 더욱 어려운 일일 거다.
p161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p248
느껴져.
내가 속삭였다.
그것의 이름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외로움인지 아픔인지,
아니면 두려움이었는지
환희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무언가를 느꼈을 뿐이다.
구역질이 났다.
떨쳐 내고 싶은 역겨움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멋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졌다.
천천히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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