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 250 김영사
1장 홀로 떠난 곳을 청소하며
p33
마음 단단히 먹자.
용을 잡으러 던전에 들어서는
검투사의 투구라도 빌려온다면
좀 침착해질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왼손으로 거미줄을 걷어내며
이리저리 빛을 비춰본다.
누군가의 집이 아니라
거대한 쓰레기통 안에 들어온 것 같다.
오래 침잠해 있던 수많은 쓰레기는
내가 들어서자
케케묵은 먼지를 일으켜
환영 인사를 건넨다.
먼지라기엔 밀도가 높아서
차라리
모래 공기라 불러야 할 것 같다.
p41
부름을 받고 다다르는 곳곳에
가난과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검게 색 바랜 빈곤의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져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것 같다.
내 시선이
오랫동안
가난에 물들어
무엇을 봐도
가난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일까?
어떤 날은
죽은 이의 우편함에 꽂힌 채
아래를 향해 구부러진
고지서와 청구서마저
가난에 등이 휜 것처럼 보인다.
p100
스스로 지하에 유폐한 생활,
어둠 속에서 칩거하며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홀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무엇에 몰두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집에 머무는 며칠 동안
그에 대한 의문을 거듭할수록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든
그것은
그저
내 생각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2장 조금은 특별한 일을 합니다
p139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특별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고귀하다고,
그리고 내가 하는 이 일도
너무나 소중한 직업이라고….
p236
죽은 자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직업이라지만
자살에 쓰인 도구를 발견할 때면
고요했던 내 마음에
한순간 파고가 일렁인다.
또 그것이
죽은 이의
직업과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깨달으면 심란해지고,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런 자살 도구는
죽은 이가 맞닥뜨려온
하루하루의
일상과 생계를 밝히는 수단인 동시에,
죽음에 이른 과정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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