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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289 시공사
어떤 수의/ 룸비니 부처님/
참나무 이야기/ 플라타너스/
바람과 새/ 걸레/ 숫돌/
첨성대/ 아라연꽃/ 한 알의 밀/
추기경의 손/ 선암사 해우소/
진실/ 네모난 수박/ 희이마기러기/
낙산사 동종/ 하동 송림 장승
p26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만큼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야.
내일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살아 있는 오늘을
더 열심히 성실하게 살 수 있어.
요즘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탐내는 것을 보면
내가 내일 죽는다는 사실을
정말 잊고 사는 것 같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말이야.
p98
너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숭고한 삶을 살았다. 수고했다.
걸레가 없으면
이 세상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너의 역할은 참으로 소중했다.
p143
그는 자신이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땅에 떨어져 죽을 때에는
견딜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통이
찾아올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수없이 새로운 이삭을 몸에 단 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새롭게 쑥쑥 자라 올라
다시 태어나는 일이야말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일이었다.
p195
진실은 늘 맑고 순결했다.
더럽지도 때 묻지도 않았다.
진실은 존재 그 자체로서
고결하고 숭고했다.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그러나 진실은 정작
인간의 삶에 존재해 있기를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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