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 191 문학동네
p7
여자아이를 찾습니다.
도라 브루더, 15세,
1미터 55센티미터,
갸름한 얼굴, 회갈색 눈,
회색 산책용, 자주색 스웨터,
감청색 치마와 모자, 밤색 운동화,
모든 정보는
브루더 부부에게로 연락 바람,
오르나노 대로 41번지, 파리.
p15
뭔가 지워졌던 것들이
빛 가운데로 다시 떠오르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흔적들은 어떤 기록들 안에 존속한다.
사람들은 어디에
그런 기록이 숨어 있으며
어떤 관리자가 그걸 지키고 있는지,
그들이 선뜻 그걸
당신에게 보여주려 할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관리자 자신들이
그런 기록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었을 수도 있다.
p33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
공간들이란,
아주 희미하게나마
거기 머물렀던
이들의 각인을 간직한다고,
각인이라 …… 안으로 파이거나
바깥으로 돌출된 자국,
세실과 에른스트, 도라,
그들은 자국은 아무래도 움푹하다고
말해야 하겠지.
그들이 머물다 떠난 자리를
다시 찾을 때마다 나는
움푹 파인 상태로 남아 있는
부재와 공백의 각인을 느꼈다.
p65
1941년 12월 14일, 도주.
도라 브루더의 ‘출교 날짜와 이유’는
기숙학교 기록에 그렇게 남았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외출하는 날, 그녀는 오르나노 거리의
부모를 보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 때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해의 마지막 달은
히틀러 군대가 파리에 진주한 이래로
가장 암울하고 숨막히는 시기였다.
p96
어언 육십 년이 흘러 고문서들은
차츰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
나치 강점기의 파리 경찰청은
센 강 기슭에 떠도는
거대한 옛병영의 환영과 다를 바 없다.
이 환영은 우리가
과거를 다시 들춰보는 순간,
어셔 가의 저택처럼
음침한 모습을 드러낸다.
날마다 그 앞을 지나다니는 우리는
1940년대 이후는 그 건물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다.
이건 같은 돌멩이가 아니고
같은 복도들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p147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담벽 너머로는
무인지대가 펼쳐 있다.
공허와 망각의 지대,
투렐의 낡은 건물들은
픽퓌스 가의 기숙사처럼
철거되진 않았지만,
결국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꺼운 망각의 지층 밑에서
감지되는 게 있었다.
때때로 아주 먼 메아리처럼
소리가 죽어버려,
정확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파동들,
나는 마치 자장(磁場)의
언저리에 서 있는 듯했으나
그 파동을 읽어낼 바늘 추가 없었다.
의혹과 자기기만 속에서
사람들은 팻말을 달았다.
군사 지역,
영화 및 사진 촬영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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