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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성한 책방 : 마음의 심연

by 풍성한 그림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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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301   민음사

 

p29

집에 돌아오자 그는 완벽하게

건강을 회복해 자잘한 약병들을

하나하나 휴지통 속에 던져 버렸다.

그는 순한 표정을 지은 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

약간 불안해 보였고

달리기를 많이 했다.

실제로 그는 다리를 단련하라는

과제를 받은 아이처럼

넓은 정원을 달리면서,

또한 성인다운 태도를 되찾으려

애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무엇일까? 누구일까?

하지만 그것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집안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뤼도빅 자신뿐이었다.

 

p61

크레송가 사람들은 사고 이후

뤼도빅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진짜 뤼도빅은 죽고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뤼도빅을 부를 때

이름이 아니라 라고 했고,

그가 눈앞에 있는데도

마치 그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면 뤼도빅은 멍한 눈길로

창 너머 들판을 바라보곤 했다.

 

p101

그날 아침으로 돌아가자면,

일찍 일어난 그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은 공장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그때까지도 거북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평소에 하지 않던

한두 가지를 하는 것으로는

긴장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동안 그는 바로 자기 집 지붕 아래서

그런 괴상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불쾌했다.

두 번째로 화가 나는 것은

힘의 배분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사자 중 하나는

상처 입기 쉬운 약자이고

상대는 강하고 잔인했는데,

전자의 품성이 너무나도

착하고 여려서 제삼자가 개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문제의 희생자가 그의 핏줄,

그의 친아들이라는 점이었다.

 

 

p142

애도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먼저 그 가혹함,

일상적인 진부함이 있다.

그로 인해 당신은 처음에는 얼떨떨했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리지만

주변에 완전히 무심해진다.

가까운 이들에게든 먼 이들에게든

근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방황이나 권태에

자신을 방치했다가

차츰차츰 애도에서 벗어나

삶으로 돌아온다.

달라진 나날들이 펼쳐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시간,

곧 그와 당신의 관계가

사라진 시간이 이어지는 것이다.

 

p221

집에 돌아온 앙리 크레송은 집안사람들,

심지어 아내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아

전용 욕실로 바로 통하는 복도에 면한

작은 문을 열었다.

코냑을 여러 잔 마셔서

좀 취하긴 했지만, 어쨌든

조심스럽게 발끝으로 걸어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배려에서인 의무에서인지 조금 열어 놓은

두 방 사이의 문을 통해

아내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상드라는 코 고는 소리와

휘파람 소리를 번갈아 내며 자고 있었다.

그 태평하고 건강한 소리를 들으며

앙리는 벌써 가슴이 아프고 수치심으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p283

그들이 소리 죽여 나누는 화제는

앙리와 가나슈 간의 열정에 관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때로는 거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상드라의 방에서 들려오는 그

녀의 거친 숨소리와

가까운 필립의 방에서 들려오는

요란하게 코 고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필립은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비밀을 지켜야 해서 화가 나 있었고,

마리로르는 사람들을 덮어놓고

비꼬는 버릇이 점점 더 심해졌지만,

아무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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