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 247 소담출판사
비단 같은 눈-
제롬은 산양을 죽이지 않기로 했다.
왜, 언제,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필사적으로,
그리고 서툰 솜씨로
쫓아왔지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단순한 아름다움 혹은 거만함,
혹으 비스듬히 기울어진 눈 속에 비친
평화로운 동물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제롬은 이유를 알려고 들지 않았다.
지골로-
니콜라는 좀 까다로웠다.
그는 지골로라는 직업에
전혀 애착이 없었다.
버릇이 없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았다.
상냥하고 친절하며,
아주 능숙하지 않을지도 몰라도
열심인 데다가 다정다감하다고 할 정도로
좋은 애인 노릇을 해준다.
누워 있는 남자-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건 알고 있었다,
죽어가는 있다는 건, 무언가가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몸을 숙여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그는 우스꽝그럽게 말라버린 견갑골이
아내의 부드러운 손안에서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우스꽝스러움,
그가 죽는 이유였다.
다섯 번의 딴전-
늘 그렇듯이 생각에 잠긴 듯 차분했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거울 속의 그녀를 향해
짧은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리고 핸드백을 열어
작은 검은색 권총을 꺼내 들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총을 장전했다.
그런데 속상하게도 권총이
말을 잘 듣지 않아
손톱이 깨져버렸다.
어떤 분야에서건 완벽하지 못한 걸
못 참는 조세핀 폰 크라펜베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들고 온
작은 가방을 열어
손톱 다듬을 줄을 꺼내
정성 들여 깨진 손톱을 다듬었다.
사랑의 나무-
아름다운 영국의 가을,
기울어져가는 노을 속에서
약혼녀는 평소보다 더 환하고,
더 여성적이고, 더 우아해 보였다.
그는 아주 잠깐,
그 모든 것이 그를 철저히
냉담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하지만 어쨌든 약혼녀는 그를 사랑했다.
혹은 사랑한다고 믿었다.
어느 저녁-
그녀는 한 달 가까이 마치 허수아비처럼
그 고통을 피해 가게 한
보존의 본능을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피하지 말고, 언제든
모든 걸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조금 괴로워하면 어떤가?
그러나 그것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디바-
어둠 속에서 행복에 취한 사람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를 고대한다.
그때 그녀는 혼자가 된다.
비극적이고 달콤하게 홀로 선다.
그는 그것을 느꼈다.
거기에서 그는 세 명의 전남편이나
서른 명의 애인 만큼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더욱 비참한 것은 그가 하찮은 단역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적어도 단역은 공연에라도 필요하니까.
완벽한 여자의 죽음-
행복한 사람이 여기 있네.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은
별로 없는데, 사랑했던 브루노도,
사랑하지 않았던 커트도,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하지만 이 아이는 행복해하는군.
세 시간뿐이지만 그게 어디야.
낚시 시합-
낚싯바늘에 지렁이를
꿰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프랑크는 간이 졸아서
그런 일을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낚싯밥 하나
제대로 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서투른 여자처럼 굴었다.
그 모든 걸 해결한 건 야스코였다.
그는 엄숙하게 팔을 들어 올리더니
낚싯대를 던졌다.
우리는 집중해서 그를 관찰했다.
슬리퍼 신은 죽음-
그의 멋진 베이지색 정장,
커프스 그리고 그의 손은
끔찍한 땀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그는 실질적으로 숨이 끊어졌다.
그 사실을 한순간에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심지어 아무런 육체적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남자답고 손질이 잘된 손이
그의 뜻과 달리 무릎으로 툭 떨어졌다.
불안함 없는 꿈처럼 그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기다렸다.
왼쪽 속 눈썹-
애를 썼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문이 열리기를 거부했다.
레티시아는 한 번 씨익 웃고
문고리를 잡고 흔들다가 문까지 흔들었다.
그리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웃음이 터졌다. 프랑스에서
가장 최신식이고 가장 빠르다는 기차가
도어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니.
예닐곱 번의 시도 끝에 그녀는
왼쪽에 난 작은 현창으로 풍경은
계속 지나가고,
그녀의 가방은 꽉꽉 잘 잠겨 있고,
망할 메뉴를 먹으로 가야하는데
이문 하나가 그녀와 그녀의
평범한 미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개 같은 밤-
눈이 잔뜩 묻은
누렇고 더러운 개를 바라보던
지메네스트르 씨는 누군가 개를
쳐다봐준 게 한참 되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지메네스트르 씨의 파란 눈이
메도르의 갈색 눈에 풍덩 빠져버렸다.
주인과 개는
아주 잠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시간을 가졌다.
로마식 이별-
하늘이 무너지고,
크리스털 잔이 부딪히고,
종업원들은 기절하고,
치와와들은 멍해지고,
루이지는 깨달았다.
잉게와 루이지 사이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교환,
바로 그 눈빛 교환이 일어난 것이다.
여자의 접시꽃 같고
솔직한 눈망울에는
순진한 질문뿐만 아니라
‘이 바보야, 사랑해’라는
고백도 맺혀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친 로마 청년의
갈색 눈에도 순진하고 남자다운,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질문이 깃들었다.
‘정말?’ 대반전이었다.
길모퉁이 카페-
그는, 그렇다, 무엇이든 덤비는,
정말 바보였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대단히 잘못한 일도 없었다.
그의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큰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한 자신의 상황,
초췌하고, 머리가 다 빠지고,
비틀거리며 주사만 기다리는
자신을 만들지 않으려면
미래를 앞당기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건 안 된다.
피하려 해보겠지만
그럴 용기가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멋지고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마르크,
다정한 마르크가 되었다.
7시의 주사-
뭐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흔들린 느낌이었다.
그것은 바로 본질이었다.
그러나 좋은 취향이나 지성,
절대적인 것 또는
사랑의 본질을 그와 가까이 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적용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얼굴은 심하게
조명을 받아 환해져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탈리아의 하늘-
한번은 차가
엄청난 점프를 하며 뒤집어졌다.
굉음에 마일스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밭이었다. 밀밭,
천천히 숨을 쉬면서
살아 있다는 것에 다시 익숙해졌다.
겁은 나지 않았다.
마일스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역겨움과 이상한 쾌감이 섞인 냄새,
피 냄새가 났다.
머리 위로 밀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뒤로 펼쳐진 이탈리아의 하늘은
창백하리만치 파랬다.
마일스는 손을 움직여보았다.
눈까지 손을 들어 올려 햇빛을 가렸다.
그리고 그의 손 밑에 있는 눈꺼풀,
그의 눈썹 위에 있는 손바닥을 느꼈다.
해도 진다-
그것은 자명했다.
소는 한가로이 언덕과 암소들,
기름진 풀가 떡갈나무, 밤,
하늘을 생각하고 있었지 뭔가,
누가 보더라도 10분 내에
자기 목숨을 앗아가버릴지도 모를
금발 머리 청년은 안주에도 없었다.
당황한 투우사는
할 일을 빼앗긴 사람처럼
소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고독의 늪-
그녀의 삶을 참 좋아했다.
친구도 많고, 애인도 많고,
재미있는 직업에 아이도 있고,
음악, 책 꽃, 장작불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까마귀가
야단스러운 무리를 이끌고 지나갔고,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그 누구에게도,
그녀 자신에게조차
(그래서 더 심각하다)
설명할 수도 없는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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