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종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190 동문선
나는 점점 멀어진다.
점차 추억의 재가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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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뱅 박물관
허풍선이
‘내 삶 속의 어느 하루’
휴가 끝
p43
진열장 유리에 비친 그 사나이의 모습은
마치 석탄독에 빠졌던 것처럼 거무튀튀했다.
입은 비뚤어지고, 코는 울퉁불퉁한데다가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곤두섰고,
시선마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한쪽 눈은 꿰매져 있었고,
나머지 눈은 흡사 카인이 눈처럼
커다랗게 열려 있었다.
잠시 동안 나는,
이 가엾은 피후견인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뚫어져라 그를 응시했다.
p75
어떤 때에는 저녁 무렵
마음 좋은 누아르티에 할아버지가
긴 백발을 흩날리며,
1백 년도 더 되어
기름칠을 새로이 해야 할 정도로
삐걱거리는 바퀴의자에 앉아
우리 별동의 복도를
순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내 운명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
지체마비자가 아닌
다리기 선수가 등장하는
대하소설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
결과야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
어쩌면 잘 될지도 몰라.
p105
나는 아이들을 은근슬쩍 관찰한다.
나는 비록 허수아비 같은
아버지가 되어 버렸지만,
부산스럽게 움직여대고 투덜대는
테오필과 셀레스트,
이 두 아이만큼은 활기가 넘친다.
나는 아이들이 걷는 모습만
줄곧 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아이들은 내 곁에서
비록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축 처진 아이들이 가녀린 어깨에서
거북한 심정이 배어 나온다.
p136
뱅상의 자동차가
병원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방문객들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나와 세상을 갈라 놓는
마지막 몇발자국을 옮겨 놓기 위해서
특별히 용기를 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p160
나는 처음엔
몇몇 사람들 때문에 몹시 두려워했다.
그 사람들이 내 감방을 지키는 문지기이며,
구역질나는 음모에 가담한 자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후로는 나를 바퀴의자에 앉히다가
팔을 삐게 한 사람이나
켜진 TV 앞에서 밤을 지새우게 한 사람,
너무나 고통스러운 자세로
내버려둔 사람들을 증오했다.
몇 분, 혹은 몇 시간만 더
이 증오심이 지속되었더라면
그들을 죽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대단한 분노라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그라지는 법이다.
이제는 이들 모두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그럭저럭 해내는 익숙한 얼굴들이 되었다.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십자가의 무게가 너무 무거울 때,
십자가를 다만 얼마만이라도
들어 주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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