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미나토 가나에 301 김영사
프롤로그-
모래가 든 주머니를 상상해보세요.
작은 이질감은 그 주머니에 생긴
긁힌 상처 같은 거에요.
본인이 작은 틈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해서 만지작거리다
틈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본인은 그다지 의식하지 않거나
혹은 의식하지 않으려 하는데도
남이 조심성 없이 만지는 바람에
주머니에 구멍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1장 육, 십사-
밤 중에 물소리가 들리면 무섭지만
수도꼭지가 조금 열려 있었다는
이유를 알면 무섭지 않아.
이유를 알면 대책도 세울 수 있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사흘째에는 근육통이 가셔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어.
이제 근육통이 오지는 않았고
닷새째부터는 숨도 안 차기에
거리도 5킬로로 늘렸지. 이레째에 재봤더니
1킬로 줄어서 뛸 듯이 기뻤어.
다음 일주일도 똑같은 코스대로 했는데
몇 킬로가 됐을 것 같아
1킬로 늘어서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살을 빼려고 한 건데
운동하는 뚱보가 된 거야.
2장 도넛 한가운데-
나는 개가 엄마랑은 관계없는 일로
무슨 고민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도넛을 만들면 기운이 나지 않을까 하고
열심히 만들어본 거죠.
반죽을 많이 치대가 보니 지쳤는데
잠이 들지 않아 수면제를
너무 많이 먹은 거예요.
모처럼 만든 도넛을 먹지도 않고.
그런데 나는, 나만큼은, 그게 안됐다거나
불쌍하다고는 생각 안 해요.
개는 분명 도넛 한가운데는 먹었을 테니까.
가장 맛있는 건
다른 사람은 모르는 도넛 한가운데,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도넛을 만든 적 있는 사람뿐이죠.
3장 꼭 닮은 부모 자식-
너한테는 요코하마가 어떤 이미지냐?
뚱보 빼고 세 개를 꼽아본다면?
천성이 어둡다, 피해의식이 강하다.
비뚤어졌다. 응,
나도 옛날에는 똑같은 이미지였어.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일이 있었잖아.
책상을 탕 두드리거나 넘어뜨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지금
나 비웃었지 하고 울면서 소리 지른다든지,
수업중이든 급식 시간이든 가리지 않았지.
그 탓에 아무도 수군거리지도 못하고
막 생각난 농담도 못 했잖아.
쉬는 시간에 전날 본
개그 프로그램 이야기도 못 했고.
4장 도덕이니 윤리니-
우유 어머니 기라 씨랑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밖에
안 만났지만 이미지가 전혀 다르니까.
요코아미 기라 씨는 쾌활하고
스타일 좋고 다정해 보일 뿐 아니라
뚱뚱하다기보다는 통통한 느낌이었거든.
아, 근데…….
그렇게 득달같이
기다렸다는 듯한 얼굴 하지 말아줄래.
유우 자살이랑 관계있는 이야기 아니야.
5장 달콤한 속삭임-
자기 안에 마음의 소리가 있는 건 알면서도
몸의 소리가 있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마음의 소리는 응석받이에 나태합니다.
적어도 제 마음의 소리는,
때로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만
그런 건 정말로 가끔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우에게 그걸 전하고 싶었어요.
유우에게 직접 도달할 것 같지 않아서
그 아이 어머니가 전해주기를 바랐고요.
분명 도넛에서 뭔가가 들렸을 겁니다.
6장 동경하는 사람-
예쁜 상자에 넣어 갔어.
귀여운 종이를 깔고.
지카씨는 기뻐하며 뚜껑을 열더니
냄새를 맡고는 맛있겠다 하고
하나 집어 들었어.
그런데 그게 입까지 가지 않는 거야.
나한테 미안했는지
상자에 돌려놓지도 않고
당황한 듯 손을 공중에 멈추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도넛을 하나 집어서
눈앞에 댔지.
“할머니가 도넛으로
늘 이렇게 하곤 했어요.
보고 싶은 사람 모습을 볼 수 있다면서.
먹는 건 부록 같은 거예요.
7장 있는 것 없는 것-
어머니는 이미 기력을 잃어서
싸울 수도 없을 거예요.
어머니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에요.
구 년 동안 키워준 은혜를 갚는 거예요.
그리고 엄마가 저지른 일에 대한 속죄요.
이문제는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에필로그-
자기가 만들고 싶은 그림에서는
부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조각이라도
그 조각이 딱 들어맞는 곳이
반드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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