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로 길에 이어진 문장을
쉼표만큼 쉬어가며 읽었다.
서술어가 주는 소멸해버릴 것만 같은
아득함을 느끼며 읽었고
순간에 찾아오는 여운은 말 줄임표를
스스로 붙여가며 읽게 했다.
아침 그리고 저녁
욘포세 150 문학동네
p17
신이 인간이 되어
우리 사이에서 살게 된 후로,
멀리 있으며 거리가 좁혀졌다는 것을,
그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모든 일이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가 올라이이고
어부이면 마르타와 결혼했고
요하네스의 아들이며 이제, 언제라도,
조그만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하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 있다.
신이 존재하기는 하겠지,
올라이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다.
p39
그는 찬장에서 커피잔을 꺼낸다.
설거지는 자주하지 않지만,
뭐 어떤가? 남자 혼자 사는데,
요하네스는 생각한다 그리고
싱크대로 가서 잔을 헹군 다음
찬장으로 가 커피를 따라서
조심스레 맛보고 식탁 위에 잔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치즈를 바른 빵을 가져와서
자리에 앉아 빵을 한입 베어문다
그리고 커피를 조금 마신다,
오래 꼭꼭 씹어보지만
도무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무슨 맛인지 도통 모르겠군,
생각하며 요하네스는 다시 음식을 삼킨다.
p42
어쩐지 모든 것이 제안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말하는 듯하다,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의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
모든 것이 그 자신처럼 나이들어,
각자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기 서서,
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요를 내뿜고 있다,
내가 대체 왜 이럴까?
멀뚱거리며 여기 서서,
창고 안의 오래된 물건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여기 이렇게 서서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말이야,
요하네스는 생각한다,
p67
페테르와 함께 해변으로 가며
요하네스는
페테르의 걸음이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 발 한 발,
아주 천천히 걷고 있다,
이따금 몸이 옆으로 기울기도 하고,
걸음을 뗄 때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다,
그리고 맙소사,
저 친구 왜 저렇게 마른 거야,
머리는 또 저렇게 길고 하얗게 세어서는,
그래 자를 때가 됐어,
그는 페테르가
부잔교浮棧橋로 가서 작은 고깃배를
끌어당기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오늘처럼 파도가 거친 날에는
바다로 나가는 게 위험할 수도 있겠어,
이런 생각을 하다니,
평생 어부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이
바다로 나가는 게
뭐가 무섭다고 대체 내가 왜 이럴까,
오늘은 모든 것이 여느 때와 다르다,
p104
부두로 오르는 요하네스의 발길이
젊은이처럼 아주 가볍다,
너무 수월하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요하네스는 생각한다,
이따금 몸을
꿈쩍하기도 그렇게나 힘이 드는데,
오늘 아침에도
지금도 몸이 어찌나 가벼운지,
움직일 때 어째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는 것 같으니,
그것참, 요하네스는 생각한다
p127
페테르가 얼른 와야 하는데,
오늘 저녁 페테르의 머리를 잘라주기로,
그렇게 두 사람이 약속했다,
여름 저녁이라 해가 길고 환하다고는 해도
페테르의 정원 벤치에 앉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방금 사위가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레이프가 어딜 가나,
요하네스는 생각한다,
무작정 이러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아무렴, 그리고 일어나는데
저 아래쪽 거리에서
레이프가 차를 타고 오고 있다,
옆에는 싱네도 타고 있다,
그의 막내딸,
아니 그애가 날 알아보지 못하다니,
그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으려 하다니,
이런 고약한 일이 있나,
뒤표지/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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