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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성한 책방 : 단 한번의 시선

by 풍성한 그림 202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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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코벤   583   비채

 

p18

당신 이름은 스콧 덩컨,

나이 서른아홉,

컬럼비아 법대 졸업,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으면

지금보단 훨씬 많은 돈을 벌었겠지만

당신은 그런 따분한 일이 싫었소,

당신은

육 개월 째 검찰청에서 일하고 있소.

당신 부모는

작년에 마이애미로 이사했소.

당신에겐 누이가 있었는데,

대학을 다니다가 죽었고.”

 

p49

잭은 그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레이스는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잭은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뻣뻣한 자세로 서 있었다.

고개는 떨구어져 있었다.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들뜬 모습으로

분주히 움직였을 터였다.

맥스와 마찬가지로 잭 역시

단 일 분도 잠자코 있지 못했다.

앉아 있을 때도 다리를 떠는 그였다.

언제나 에너지가 철철 넘쳐흘렀다.

하지만 지금 그는

돌처럼 굳은 모습으로 식탁을,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식탁에 놓인 문제의 사진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p95

그녀는 영업시간을 확인해보았다.

분명 오전 10시에

문을 연다고 되어 있었다.

그녀는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1020분이 되자

첫 번째 손님이 나타났다.

삼 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영업 끝표시를 발견하고

영업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문도 한번 잡아당겨보았다.

그녀가 과장된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레이스가

동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여자가

홱 돌아서서 총총 사라졌다.

그레이스는 묵묵히 기다렸다.

 

p134

오전 10시에 여자가 속옷 차림으로

있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몸을 숙여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인지도 몰랐다.

창문에 커튼을 쳐놓는 것을

깜빡 잊은 채 란제리 차림으로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바깥의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으니

그럴 만도 했다. 누구라도

슬그머니 피하거나

손으로 황급히 몸을 가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건지도 몰랐다.

 

p148

보스턴 가든에서

끔찍한 사고가 벌어진 지도

벌써 십오 년이 지났다.

언론은 올해도 잊지 않고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기념 기사를 일제히 실었다.

유족들과 생존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대부분

그날 사건이 잊히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순순히 가자들의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p202

그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그녀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프레디는 보나마나

시체가 되었을 테고,

경관도 마찬가지,

마지막 남은 목격자는?

살레인.

그는 반드시 돌아와

그녀를 제거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지내야 할 것이다.

밤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될 것이고,

낮에는 인파 속에서

그가 없는지 살피게 될 것이다.

그는 복수를 위해

마이크나 아이들을 노릴지도 몰랐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그를 막아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p256

몇 년 만에 펄머터는

살인 미수와 기괴한 납치,

그리고 잔인한 폭행이 뒤섞인

심상치 않은 사건을 맡게 되었다.

그가 노트의 왼쪽 윗부분에

잭 로슨이라고 적었다.

오른쪽 윗부분에

로키 콘웰이라고 적었다.

실종된 두 남자는

톨게이트를 동시에 통과했다.

그가 두 이름을 선으로 이어놓았다.

 

p283

슬픔의 여러 단계,

제일 처음 사람들은

부정을 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나쁜 소식을 접하면

누구나 상대가 전하는 말을

완벽히 이해한다.

사랑하는 배우자, 부모, 아이들,

그들이 영영 살아

돌아오지 못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바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영원히 사라졌고

영영 그들을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한순간에 이해하게 된다.

다리가 풀어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도

그 사실만큼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p306

우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평화로워지기 위해서는

꾸준히 움직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게 하면

유죄와 결백함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었다.

과거와 꿈과 기쁨과 실망도

마찬가지 였다.

그저 생존만을 걱정하면 되었다.

고통을 주거나 상처를 받거나,

죽거나 살해되거나.

 

p408

그녀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퍼즐을 조각을 맞춰나갔다.

제리 덩컨은 정확히

언제 살해되었을까?

화재사건을 기사로 읽었을 때

그레이스는 한참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화재사건은

보스턴 대학살이 벌어진 지

몇 달 후에 발생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레이스는 정확한 날짜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타임라인 전체를 훤히 알아야

엘로와 지미 엑스의 관계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p453

그 여자가 시야에 들어오자

우는 잽싸게 총을 뽑아들었다.

그는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다.

바로 지금,

바로 이곳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는 미신을 믿지 않았다.

그녀를 학교에서 다시 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에겐

아이들이 있었고,

집도 바로 학교 근처였다.

학부형들의 수는

대충 이삼백 명쯤 되는 것 같았지만

그는 어쨌든 달려가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

악마는 지체없이 처치해야 했다.

 

p499

그가 셔츠 자락을

걷어올리고 있었다.

허리춤에 꽂힌 총이 보였다.

그가 총을 잡았다.

그레이스의 총이

홀스터에서 뽑혀나왔다.

의문을 던질 시간이 없었다.

윤리적 딜레마에

빠질 틈도 없었다.

소리쳐 경고한다든지,

멈추라든지,

두 손을 머리에 얹으라고

지시라 시가도 없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교양도, 자비도, 문명도,

예의도 필요 없었다.

 

p545

장례식 날엔

모든 것이 흐릿했다.

그레이스는 평소에 끼고 다니던

콘택트렌즈를 일부러 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 흐릿함 속에

파묻혀 있고 싶었다.

그녀는 맨 앞줄의 벤치에

앉아 잭을 생각했다. ~

그녀는 알고 있는 그의 모든 과거는

이제 백색소음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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