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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성한 책방 : 거인

by 풍성한 그림 202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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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아우스 뎀 지펜

225 바다출판사

 

낙인찍히지 않은 자들을 경계하라.”

리히텐베르크

 

1

대들보

별명이 틸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잘 나타내긴 했다.

단박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큰 키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의 직업까지도

넌지시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틸만의 아버지는 나골츠하우젠 시에서

아주 유명한 기와장이였다.

 

사슬

틸만은 아버지의 뜻에 순응했다.

언젠가 기와장이가 될 거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길어었다.

뵐칭거와 아들들이라는

상호 자체가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그걸 요구하고 있었다.

 

프란치

파티에서 프란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 본 틸만은

그녀가 꽤 단순한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루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함께 있다가 헤어질 때면

문득 프란치로 부터 의미 있는 말은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했다.

 

징병검사

방금전 검사는

필요 없다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의사는 틸만의 신체를

매의 눈길로 꼼꼼히 살펴보았다.

검사실이 전혀 덥지 않았음에도

틸만은 이마에서 진땀이 솟았고

발은 여전히 얼어붙은 기분이었다.

 

현장에서, 세상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 하나하나가

자꾸만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먼 곳으로 달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높은 곳에서

다시는 밑으로

내려갈 수 없을지도 모르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의사를 찾아가다

그는 키에 대한

틸만의 고민을 덜어주면서,

동시에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했다.

 

다시 만나 프란치

프란치는

타인의 시선에 매우 민감했고

그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 속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니,

정상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

틸만의 키가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사슬이 끊어지다

지금까지 늘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서만 살아오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그는 기와장이 일 말고는

그 어떤 직업훈련도

받은 적이 없었다.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교수를 만나다

뇌하수체는 뇌 속에 있는

내분비기관으로, 주요 임무는

성장과 관련된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뇌하수체는

열다섯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에 활동을 중단한다.

하지만 틸만의 경우 뇌하수체에

이상이 생겨

지금도 계속 활동 중이다.

 

발전

틸만은 독학자들이 갖고 있는

성실함으로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았다. 독서를 통한

새로운 깨달은

그에게 행복과 용기를 가져다주었고,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으로 그를 이끌었다.

이제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측면에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2

제안을 받다

무슨 연유로 저에 관한

기사를 쓰려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럴만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불행과 위안의 공존

질병이란 그냥

우연히 생겨난 불행의 하나일 뿐,

그 이상은 절대 아니다.

물론 불행은 끔찍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사소한 일이다.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젖어 우적거리며

눈물바람을 하는 것은

그의 적성이 아니었다.

 

낡은 고치

어머니는 틸만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아들의 인생이 비참해진 것은

자신의 인생이 비참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게 전부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더 심란하고 무거웠다.

 

또 한 번의 제안

아들로부터

오늘 손님이 찾아올 거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물론

이 남자의 말을 믿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틸만을 찾아온 손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새로운 어려움들

당장 물이 턱 밑까지 차오른 상황인데

그까짓 희생이 뭐 대수란 말인가,

부모님은 오갈데 없어진 그를

다시 집에 받아주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가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할 때다.

사회에 유용한 일원이 되어

살아갈 수 없다면, 또 이렇게 혼자서

외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이 괴물 같은 몸뚱어리로

벌 수 있는 작은돈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틸만, 유명해지다

틸만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을 주목하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을 한 게 전혀 없었다.

나골츠하우젠을 위해

대체 그가 무슨 일을 했단 말인가

그가 누리는 지금의 이 명성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3

징후와 예감

틸만은 이제

자신이 피아노연주를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했다.

섬세한 터치를 요구하는 피아노는

조만간 그의 투박하고

조야한 손가락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가장이 된 틸만

틸만은 전혀 생색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쓸 용돈만 조금 빼놓고는

버는 돈을 전부 가족들에게 주었다.

용돈은 자신을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곳에 사용하였다.

어머니가 정육점에서 벌어오는

약간의 돈 말고는

틸만이 받아오는 사례금이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니나

그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빽빽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고서,

그런데 뭐가 못마땅한지

가슴팍 앞에서 두 팔로 팔짱을 낀 채

크고 검은 눈으로 강

당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혼자에서 둘로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세상에 고상한 일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 내 생각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

인간희극은 아주 평범한 작품이야,

그 작품에 함께 연기하고 싶으면

겸손하게 연습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마법에 걸린 왕자

키는 사소한 문제이며,

그들처럼 정신적인 영역의 것들을

더 선호하는 경우 키는

어깨를 한번 움찔할 정도의

가치도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4

열광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나골츠하우젠으로 편지를 보냈다.

중년부인들은 약간 흔들리는 글씨체로

수많은 장애를 잘 극복하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성장한

그의 인생에 경의를 표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했다.

 

야외로 나가다

새 한 마리가

지저귀는 소리 이외에는

고즈넉하기 짝이 없었다.

틸만과 니나는 고요를 즐기며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풍경을 둘러보았다.

새벽의 들판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독일의 공룡

명성과 기이함이

그에게 부과했던 힘든 임무를

더는 수행하고 싶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사람들이 마련해준

각종 무대에서

물러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죽음이 다가오다

종종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때는 말짱한 정신으로

진지하게, 또 어떤 때는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

틸만은 너무 많은 감정을 싣지 않으려

애쓰며 조만간 떠나게 될

여행 이야기를 하듯이

그렇게 죽음을 언급했다.

그 여행의 유일한 특징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여행이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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