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너머로는 들리지 않는 진실
마거릿 밀러 365 엘릭시르(문학동네)
p9
벽장은 천국으로 이르는 길처럼 좁았고
가구 광택제와 염소 냄새에 더하여
콘수엘라의 몸 냄새까지 났다.
하지만 콘수엘라가
시에스타를 취하지 못한 까닭은
몸이 불편해서가 아니었다.
이 미국인 손님들이
무엇 때문에 말툼을 하는지
알아들으려고 애쓰느라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었다.
p49
콘수엘라는 꾸벅꾸벅 졸다가
할리우드행 버스에 타는 꿈을 꾸었다.
별안간 버스가 멈추더니
예수처럼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문을 열고 말했다.
“콘수엘라 후아니타 말다레나 곤살레스,
폐병에 걸렸군,
즉시 버스에서 내리시오.”
콘수엘라는 그의 발치에 엎드려
울면서 빌었다.
그는 냉정하게 등을 돌렸고
콘수엘라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처음 깨어났을 때
콘수엘라가 들은 것은
자기 비명이었다.
다음 순간 일어나 앉으면서 비명은
자기만 지른 게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다.
p141
도드는 두 손을 끼고
회전의자에 기댔다.
이제 브랜던이 원하는 건
여동생을 찾는 게 아니라
루퍼트를 벌주는 것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보였다.
도드는 슬며시 몸을 떨었다.
햇볕이 화장한 날 오후 3시였으나
음산한 겨울밤 같았다.
도드는 일어서서 창문을 닫았다가
얼른 도로 열었다.
길 브랜던과 밀폐된 방안에
단둘이 있다는 기분이 싫었다.
p190
비극적인 사건에 관한
켈로그부인의 설명은
객실 청소부인
콘수엘라 곤살레스의 진술과
상당히 일치해,
그 여자는 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근처 청소 도구 벽장에서
밤을 보내다
켈로그 부인의 비명을 들었다더군.
그래서 방으로 뛰어갔다던데,
와이엇 부인은 이미 발코니 너머로
몸을 던졌고 켈로그 부인은
죽은 듯 기절해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지.
p270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바다 괴물처럼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에이미가 애초에
떠난 적이 없다고 하자.
그동안 줄곧 숨어서 그 집에
살고 있었다고 생각해보자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있을 수 없는 일 같긴 하지만,
그럼 많은 것들이 설명된다.
p339
콘수엘라는 한 손을 들어
이마를 짚어보았다.
껍질을 갓 깐 복숭아처럼
축축하고 차가웠다.
열이 나는 기운은 없었다.
그래도 분명히 있을 거야.
콘수엘라는 생각했다.
안에서만 열이 나고 아직 표면으로는
올라오지 않은 거지.
누가 내게
악의에 찬 눈길을 보내기 전에
집에 가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해.
복도로 나온 순간 404호의 문이
빼꼼이 열린 것이 보였다.
콘수엘라는 바람이 불어
문이 저절로 열렸을 리는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삼십 분 전만 해도 그렇게 꼭 닫혀
열쇠를 자물쇠에 집어넣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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