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를 기다리는 공간
정명섭 281 시공사
기억의 시작-
15년 전에 다친 왼쪽 발목이
욱신거렸지만 무시했다.
오래된 책을 읽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분노로 욱신거렸다.
그렇게 유명해지려고 안간힘을 쓰던
벌레 같은 인간이 갑자기
모든 걸 내려놨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15년 전-
비명을 지른 유명우는
충격으로 몇 바퀴 굴러갔다.
그 와중에도
끈 떨어진 가방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두 다리를 깔아뭉갠 차는
보닛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차를
들이받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나간 차가 뒤집어질 듯 요동쳤다.
유명우는 누운 채,
상대방이 모는 자신의 차가
어두운 터널 너머로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기억하는 사람-
“15년 전의 그 사건으로
제 곁을 떠난 가족이요.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잊을 일이 없을 겁니다.
귀국 후에 교수로 바로 임용이 되었는데
은퇴하면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점을 열자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과거-
15년 동안 기다려왔던 사냥꾼이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불쑥 찾아왔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
경찰이 나타나면
종적을 감출 게 뻔했고,
그러면 혹여 사냥꾼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단서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휴대폰을 챙긴
유명우 교수는 휠체어를 밀고
서점 한가운데로 나왔다.
반격-
유명우 교수의 애기를 들은
조세준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예상치 못한 위험한 일이지만
그의 말대로
대가는 충분히 주어질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호기심에 이끌린 조세준은
팔짱을 풀고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조사-
지하철을 타고 나는 내내 조세준은
사냥꾼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연쇄살인마들은
종종 살인은 쾌락이라고 얘기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하지 못할 살인이라는
극한의 행동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중독되는 거지.”
용의자들-
“사냥꾼이라면
저렇게 대놓고 활동을 할까?”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살인을 저지르던 사냥꾼의 모습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하지만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책을
얻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놀이동산-
사냥을 할 때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침착함이다.
사냥감은 대개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해도 놓칠 수 있다.
사냥감이 사람이라면
놓칠 경우 신고를 하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조심해야한 한다.
지금 중요한 건 무엇보다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종말과 시작-
범죄자들의 심리는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 친구랑 같이 해결했던 사건에서도
범인은 가장 열성적으로 증언했던
여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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