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린 봉그랑 183 열린책들
p17
누군가 감히
도서관의 엄격한 규정을 어겼다.
책을 반납할 때 지젤이 즉석에서
검사를 하는 데도, 누군가가
그 검사를 피해 간 것이다.
들키지는 않았다지만,
그래서 그가 얻는 게 무엇이었을까?
그는 도서를 대출 받지 못할게돼도
좋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의 글씨체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편이었다.
그 문자에 눈길을 붙박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젤이라는 그 아가씨가
그 낙서를 보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54
둘이 사는 삶에 행복한 게 있다면,
그건 메아리가 있다는 점이리라.
메아리를 찾아 산으로 가는 게
하나의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프-뒤에에서 한 시간 거리에
남자 친구 하나가 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가 혼자 살고 있다는 점이
부담스러웠다.
두 개의 고독이 서로 바라보는 것은
너무 비장하다. 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p90
내 마음 씀씀이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질 만큼
자상해져서, 벽장 안을
완전히 다시 정돈하고,
속옷을 제대로 갖춰
가지런히 쌓아 놓았는지도 확인했으며,
색깔의 조화에도 되도록 신경을 썼다.
샤워 시설 옆에는 목욕 수건을,
세면대 옆에는 접대용 수건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칫솔처럼 털이 부드러운
칫솔도 사 놓았다.
내가 얼마나 깐깐해졌는지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마다
바로 재떨이를
비우게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으리라.
그 사람이 단 한순간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무랄 데 없고 깨끗하고
아늑한 집을 만들고 싶었다.
p137
나는 잠을 잘 잤다.
여러 달 동안
그토록 많은 밤을 바쳐
꿈꾸어 온 사람과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은 사람치고는
아주 잘 잔 편이었다.
그 사람을 만날 생각에는
너무흥분이 되어 잠을 안 올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당나귀 레옹을 껴안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냥 잤다.
플러시 천으로 된 장난감은
우리의 온기를 보존해 주고,
충직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며,
죽는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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