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세상읽기] 2023.02.10
법의 정신/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나왔다.
“담당 업무, 액수를 볼 때
50억원은 이례적으로 과하”지만
“아들이 받은 성과급을
곽 전 의원이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뇌물수수에 관한 공소사실은
무죄로 판단한다.” 재판부는
일상의 상식 차원에서 볼 때
분명 50억원의 성과금은
이례적으로 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 형식을 따라 따져볼 때
뇌물로 판단할 증거가 명백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일상의 ‘가치 판단’과
재판부의 ‘사실 판단’이 어긋난다.
이러한 어긋남은 법을 일상의
사회적 삶과 괴리된 법 기술로 보는
도구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법의 ‘형식 합리성’을 기술적 차원에서
세밀하게 따질 뿐
법이 사회적 삶의 ‘실질적 요구’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감는다.
사회적 삶에서 유리된 법은
현실권력에 복무하는 법
기술자의 도구로 전락한다.
형식 민주주의는 항상
‘법치’를 앞세우지만,
사실 법치는 군주제의 본성이다.
법은 군주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통제하기 위한 장치다.
법치가 없으면 일반인은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민주주의 공화정은 다르다.
설마,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가?
법 기술자의 단순유식한
법치가 구축한 ‘폐쇄성’을
시민의 ‘초월적 문화역량’으로
고비고비마다 열어젖힌
역사가 한국 민주주의 공화정이
쌓아올린 ‘법의 정신’이라는 것을.
[기사] 2023.02.10
김기현·안철수·천하람·황교안,
국민의힘 대표 선거 예비경선 통과
/정대연 기자 조문희 기자
김기현·안철수·천하람·황교안
후보(가나다 순)가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본선 진출자로
정해졌다. 현역 의원인
윤상현·조경태 후보는 탈락했다.
유흥수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이 같은 내용의 예비경선(컷오프)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8~9일 책임당원
6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방식의
예비경선을 치렀다.
이를 통해 당대표 후보 4명,
최고위원 후보 8명,
청년최고위원 후보 4명이 추려졌다.
당 선관위는 본선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순위와 후보별 득표율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측으로 출마한
천하람, 김용태, 허은아, 이기인 후보 등
4명이 모두 살아남은 것이 눈에 띈다.
[기사] 2023.02.10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권오수 1심 유죄···
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 공소시효 남았다
/김희진 기자 윤승민 기자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원이 권 전 회장 등의
시세조종 행위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이 사건에 ‘전주’로 연루된
의혹을 받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 요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전체 범행 기간에
통정·가장매매가 101건,
시세조종 주문이 3083건에 이르는 등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시세조종의 동기와 목적이 있었지만,
시세 차익 추구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시세조종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주가조작 혐의 중
2010년 10월 이후 벌어진 행위는
‘하나의 범죄(포괄일죄)’로 보고
‘10년’인 공소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시기 김 여사 계좌에서
주식 8만주가 대량 매도되는 등
시세조종 연루 정황이 있어
검찰 수사를 통한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한겨레신문
[기사] 2023.02.10
수서행 SRT는 암환자를 싣고 달린다
/박준용 기자
지난달 30일 오전 10시께,
영하의 날씨에도
삼성서울병원 셔틀버스 대기줄이
50m 이상 길게 늘어섰다.
배차간격은 8분. 셔틀버스는
시간당 300명의 환자와 보호자를 실어날랐다.
이렇게 취재진이 방문한 수서역 일대는
서울로 먼 거리를 통원하는
중증 환자와 보호자의 정거장이었다.
대다수가 지역에서 에스알티(SRT)
고속열차를 타고 온 중증 환자다.
수서역이 암 환자 등 중증 환자들의
거점역이 된 것은
서울의 주요 대형 병원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빅5’ 중 삼성서울병원(서울 강남구, 약 2㎞),
서울아산병원(서울 송파구, 8㎞),
서울성모병원(서울 서초구, 14㎞)이 멀지 않다.
강남세브란스병원(서울 강남구, 6㎞),
분당서울대병원(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20㎞)도
접근성이 좋다. 특히 삼성서울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서역에서 병원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심장질환 관련 환자 보호자 김아무개(52)씨는
“사는 지역인 충북 청주보다
서울에서 치료를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 병원에 가기로 했다”며 “어려운 치료인데,
지역은 시스템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로 통원치료를 다니는
환자와 보호자는 먼 여정 탓에
체력이 부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환자들의 체력과 비용을 소진하는
‘수도권 쏠림 현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소재
종합병원 이상급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비수도권 암 환자들은
2012년 19만4563명에서
2021년 29만1053명으로 50% 늘었다.
[삶의 창] 2023.02.10
인간에 대한 예의
/김소민 자유기고가
MBC에브리데이
<어서와 한국살이는 처음이지>는
막내 돌잔치를 다뤘다.
가족은 함께 조깅하고 아침상을 차린다.
이 프로그램에 나온 스페인 사람
알레한드로는 인도네시아인 아내와
한국에 산다. 호텔 총지배인인
그의 집은 아내의 취향에 따라
알록달록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들이
가족과 사는 건 당연하다.
네팔에서 옥수수 농사를 했던
선데스(30)는 2016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와 프레스 공장에서 일한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4년10개월 일한 뒤 출국했다
사장이 성실근로자로 인정하면
한국으로 돌아와 4년10개월 더 일할 수 있다.
선데스는 성실근로자로 7개월 전
한국에 다시 왔다. 그는
9년8개월 한국에서 일할 수 있지만
2015년 결혼한 아내는 함께 올 수 없다.
비자를 받을 수 없다.
선데스 같은 노동자가
한국에 눌러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아내가 그를 방문하려면
관광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 또한 사장의 보증이 필요하다.
그는 네팔에 다녀올 수 있을 만큼
휴가를 얻을 수도 없다.
지난해 말 정부는
고용허가제 개편안을 내놨다.
중소기업이나 농어촌에서
일손이 부족하다 아우성쳤기 때문이지
이주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다.
개편안을 보면, 고용허가제로 온
이주노동자가
‘준 숙련 인력’으로 인정받으면
중간에 출국하지 않고
한국에서 10년 이상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살 권리는 없다.
가족결합권은 유엔이 보장하는
인권이지만 한국에서 선데스는
‘노동력’이지 ‘사람’이 아니다.
난방시설과 부엌이 생긴 건
대여섯 달 전이다. 성실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할까봐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봤다. 묵묵히 하루 할당량인
경첩 8천개를 채웠다.
한국에 돌아온 뒤, 그는
5년 동안 못했던 말을 했다.
할당량이 과하다. 사장은
보름째 일을 주지 않았다.
그 기간엔 임금도 없다. ‘괘씸죄’다.
사업장을 옮기고 싶지만
그러려면 사장 동의가 필요하다.
해줄 리 없다.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받는 까닭이다.
사장의 화가 풀리길 기다리는 그는
“아내가 보고 싶다”고 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정한
9대 핵심 조약 중 하나가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인데,
한국은 9개 중 이 조약만 빼고 비준했다.
이주노동자 없이는
밥상도 차릴 수 없는 한국인의 일상은
인종주의적 착취 위에 서있다.
[사설] 2023.02.10
여당 전대 ‘비윤’ 후보 전원 컷오프 통과,
대통령실 의미 읽어야
국민의힘 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3·8 전당대회 본선 진출자가
10일 확정됐다. 확실한
‘비윤’을 표방하고 있는
이준석계 후보 4명 전원이
각각 당대표와 최고위원,
청년최고위원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한 것이 눈에 띈다.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여당 전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온
대통령실과 윤핵관 세력의
노골적 개입 행태에 대한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준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 세력의 무리한
전대 개입에 대해
신규 당원을 중심으로
반감이 표출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실제 윤핵관 세력은
그동안 경선 룰을 뒤집고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힌 데 이어,
안철수 의원에게도 낡은 색깔론과
‘대통령 탈당’까지 들먹이며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윤 대통령은 안 의원을
“국정운영의 적”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런
노골적 당무개입과
정당 민주주의 훼손에 당심마저
준열한 경고를 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날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도 전주보다
2%포인트 하락한 32%로 나타났다.
부정평가 이유에 ‘여당 내부 갈등/
당무개입’(5%)이 새로 상위권에 들었다.
‘윤심의 전횡’에 대해 당심과 민심
모두 인내심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새겨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사설] 2023.02.10
분노 부른 ‘합법적 뇌물 받는 법’ 판
이번 판결은 권력층에게
‘처벌받지 않고 뇌물 받는
합법적 방법’을 알려준 꼴이다.
당사자에게 직접 주지 않고
독립된 경제생활을 하는 자녀에게 주면
면죄가 된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곽 전 의원의 아들에게
50억 원을 준
대장동 민간사업자 김만배씨는
곽 전 의원과 대학 동문이며
오랜 기간 친분을 이어온 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이 어렵다.
"드디어 우리 아이들이
50억 원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는
우상호 의원의 야유가 가볍지 않다.
대법원 판례는 공무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 금품을 받았더라도
‘공무원의 대리인’으로서 받은 경우,
또는 공무원이 돈을 받은 사람의
생활비를 부담하는 경우엔
뇌물죄를 인정한다. 부
자 관계가 ‘대리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사회에 큰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 함께 적용된
알선수재의 무죄는 알선 행위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검찰의 책임이 있더라도,
뇌물죄 무죄는 법원 책임이 우선이다.
사례 분석, 판례 정비 등
검토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검토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메아리] 2023.02.10
윤 정부의 ‘상생임금’을 묻는다
/이진희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와
‘상생임금’을 과제로 제시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반가움은 잠시뿐,
고용노동부가 발족한
상생임금위원회의 계획을 보면
답답함이 크다. 대기업에 흔한
연공호봉제를 직무급제,
성과급제로 바꾸는 게 주요 방향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성과급제 등의 부작용은 차치하고,
이런 체계 도입으로
정규직의 평균 임금을 낮췄다고 치자.
그래서 대기업이 인건비를 아꼈다고 치자.
그 아낀 인건비가 자연스레
하청업체의 직원들에게 흘러갈 것이라 믿는가.
한국에서 ‘상생임금’은
권고와 자율로는 도달할 수 없다.
제도의 빈틈은 수없이 많고,
그렇게 허용된 탐욕과 착취는
돈이 하청 노동자에게 흐르는 걸
틀어막는다. 일례로
경쟁입찰 때 도급비를 깎는
‘낙찰률’은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에까지 적용된다.
파견·용역업체는 원청이 책정해서
내려보낸 노동자의 인건비를
다 주지 않고 떼어간다.
이런 문제는 인건비엔
낙찰률 적용을 제외하는 법,
간접고용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중간착취방지법이 마련돼야
막을 수 있다. 제도적 강제가
필요한 부분은 무궁무진하다.
일감 중개 플랫폼들의 수수료가
30~40%에 이르러도 규제가 되지 않고,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용역 근로자 처우개선 배점은 지극히 낮다.
연대임금’은 과거 스웨덴에서
전국단위 노조가 경영자단체와
협상하며 상위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하위층의 임금을 끌어올린
유명한 사례에서 나왔다.
이런 ‘아름다움’이
한국에서 가능하다고 믿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의 ‘적은 임금’을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한국 사회이다. 정부 차원에서
‘연대임금’을 권고하더라도,
성과는 생색 내기 수준일 것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원재료 가격 변동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하는 ‘
납품대금연동제’가 통과돼
10월 시행된다.
중소기업계의 이 숙원 사업은
국회의 문턱을 넘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렸다.
여기엔 비관과 낙관이 함께 존재하지만,
그래도 결국 이루어졌다는 데서
낙관에 무게를 두고 싶다.
[대지진 르포] 2023.02.10
꺽꺽 우는 소리,
뒹구는 하이힐...도시는
죽음으로 물들었다
/카라만마라슈(튀르키예) 신은별 특파원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주의 주도
카라만마라슈.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 피해가
가장 극심한 곳이다.
지진의 진원이자 비극의 진원이다.
'폐허' 말고는 도시를 설명할 말이 없었다.
붕괴된 건물들은 형체도 없었다.
철근과 콘크리트 조각으로 된
거대한 산들이 곳곳에 우뚝 솟아 있었다.
잔해 속 어딘가에
사람들이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잔해 밖에서 실종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꺽꺽 우는 소리, 굴삭기가
건물 잔해를 헤치는 소리,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뿐이었다.
사망자는 분 단위로 불어났다.
"생존자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간격이 점차 길어졌다.
잔해 옆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한 실종자 가족을 만났다.
바로 옆에서 구조대가
다급하게 움직이는데도
이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이렇게 기다리는 게 수십 시간째다.
기대할 힘도,
화를 내거나 슬퍼할 힘도 더는 없다.
희망을 포기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일 수밖에 없는 마음을
당신들은 아는가." 한 이웃 주민이 말했다.
구조대원들은 오직 생명만 생각했다.
카이세리시의 시장이 방문했지만,
한 구조대원은 "저런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한 명이라도 더 구하는 일이다"라며 외면했다.
구조대원들은 잔해 위에 위태롭게 올라선 채
헬멧에 달린 희미한 조명으로
잔해 사이사이를 비추었다. 숨소리,
신음소리를 놓칠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희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잔해 주변엔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양말과 더러워진 베개가
뒹굴었다. 짝을 잃은 하이힐도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가리키는 물건들이었다.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희망...
피해자들 간절한 '위로'
그럼에도 희망은 존재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릴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엔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스쳤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뜻일 수 있지만,
"생존자가 나왔다"는 뜻이기도 하므로.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종자 가족들은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고 몸을 부비며 위로했다.
이방인인 기자조차 환대받았다.
구조 작업에 파견된 한 경찰은
기자에게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건넸다.
포기하지 않는 한, 그렇게 희망은
어디서든 살아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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