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아무튼
“자기만의 책상이란
얼마나 적절한 사물인가”
김윤관 139 제철소
목수의 서재
-어느 목수가 꿈꾸는 완벽한 서재 이야기
서재에 대한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서재는 단지
책으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장
-책을 사랑하는 자가 가져야 할 균형
책장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책장 한 칸의 높이와 넓이이다.
책장의 목적은 간단하다.
책을 많이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되도록 지저분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관하고 싶다는
욕망을 바탕으로 한다.
책상
-온전한 나를 대면하기 위한 필수품
서재의 중심은 책상이다.
책상은 서재의 문패와도 같다.
책상이 있다면
그 공간을 서재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가장 완벽한 서재는
책상 하나가 놓인 적절한 크기의
텅 빈 공간일 것이다.
의자
-서재의 럭셔리, 의자
나는 낡은 청바지를 입고 지하철로 퇴근해
내 서재에 에르메스 찻잔 세트에
명품 보이차를 마시는 삶을 꿈꾼다.
그런 삶은 돈만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
자기만의 주관과
취향의 깊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럭셔리가 돈과 상관없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럭셔리에 돈은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돈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사치’라고 부른다.
책
-책을 둘러싼 환상 혹은 신화에 관하여
아직 오후 3시도 안 됐지만
퇴근하기로 한다. 어차피 온 신경이
이 책에 가 있어
목공이 될 리가 만무함을 알기 때문이다.
서둘러 공구를 정리하고
주변을 청소한 뒤 책을 옆구리에 낀 채
공방을 나선다. 공방에서 멀어져
서재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목수에서 독서가로 변모한다.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천민에서 양반으로 신분이 바뀌는 순간이다.
청춘의 서재
-세 개의 라면 박스로 남은 시절
내 청춘의 빛은 라면 박스의 그것처럼
바랜 누런색이고,
내 청춘의 냄새는
젖은 박스에서 풍기는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가끔 어딘가에서 우연히 그 시절의 빛과
냄새를 느낄 때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고 만다.
여성의 서재
-여성에게 서재를 봉헌하라
나는 남성들은 잘난 척하기 위해 책을 읽고,
여성들은 자기를 비춰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적 독서법은
스스로를 합리화하게 만든다.
자기의 생각과 말에
권위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선택한
성찰적인 독서법은
읽는 이의 수평적 변화를 끌어내고
이를 통해 읽는 이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공공의 서재
-도서관, 보르헤스
그리고 기억과 망각에 관하여
도서관이란
기본적으로 기록을 보관하는 곳이다.
나는 도서관을 떠올릴 때마다
도서관이 세월을, 시간을 그러니까
끝내는 사라졌을 기억들을
수납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을 통해 우리는
잊혔을 사건과 말과 지식을 건네받는다.
선비의 서재
-사랑방, 명창정궤 그리고 오늘날의 서재
선비들은 서로의 서재를 왕래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의 이로움을 위해
기여할 바를 고민했다.
사랑방이 세상과 유리되어
숨고 싶은 ‘동굴’과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사랑방을 소유했던 선비들은
적어도 책에 빠져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힌 채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려 하는
‘꼰대’의 모습을 경계했던 것이다.
뒷표지/
“‘현대인은 병들이 있다’고
많은 사람이 진단한다.
원인에 대한 분석만큼 처방도 다양하다.
목수로서 나의 처방은 이것 하나다.
서재를 가져라.
당신만이 서재를 가져라.
명창정궤.
밝은 빛이 스며들고
정갈한 책상 하나로 이루어진
당신만의 서재를 가지는 일이
당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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