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존재하는 크놀프는 꿈일 것인다
헤르만 헤세 148 민음사
p7 초봄
「저 친구는 정말 좋겠어」
무두장이는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지하 작업장으로 가면서
그저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이 독특한 친구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의 그런 태도를 거만한 것이라
해야 할지 겸손하다고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일을 하고
발전을 이루어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가지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는 하지만, 결코 그토록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손을
가질 수 없었고 그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걸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니, 크눌프가 옳았다.
그는 자신의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따라 하기는
어려웠다.
p63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그는 침묵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 속에
숨어 있는 고통을 난 아직
실제로 겪어본 일이 없었다. 또한
두 사람이 여전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해도 그사이에는
언제나 깊은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으며,
그 심연은 오직
사랑으로만 간신히 건너갈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었다.
나는 조금 전에 친구가 했던
이야기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불꽃놀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나도 이미 여러 번
그와 똑같은 느낌을 가졌었기
때문이었다. 부드럽고 매혹적인
형형색색의 불꽃이 어둠 속으로
높이 솟아올랐다가 금세
그 속에 잠겨 사라져버리는 모습은,
마치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안타깝게 그리고 더 빠르게 사그라져
버려야만 하는 모든 인간적 쾌락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91 종말
그는 가끔씩 그래왔던 것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곧 머릿속이 피로해지면서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 시간 후에 깨어난 그는
하루 종일 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기분이 맑아지고 편안해졌다.
그는 마홀트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떠날 때,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크눌프는 자신의 시중에서 한 편을
그에게 적어주고 싶었다.
의사도 어제 그의 시에 대해
물었던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전하게 기억나는 시가
한편도 없는데다가,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시상이 떠오를 때까지
창문을 통해 근처 숲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양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성한 책방 : 딸에 대하여 (0) | 2020.11.07 |
---|---|
풍성한 책방 : 범인 없는 살인의 밤 (0) | 2020.11.06 |
풍성한 책방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0) | 2020.10.31 |
풍성한 책방 : 오리엔트 특급 살인 (0) | 2020.10.31 |
풍성한 책방 : 좀머씨 이야기 (0) | 2020.10.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