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에세이20 풍성한 책방 :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283 문학동네 p79 거울을 잘 보지 않던 아이가 문득 골똘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서는 날이었다. 10대들의 교실에서 글쓰기 교사로 일하다 보면 그런 순간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자기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별 관심 없던 시절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아이는 이제 자의식의 축복과 저주 속에서 한층 더 복잡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 눈에 비치 내 모습과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신경쓰며,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괴리를 수없이 느끼며 자라날 것이다. 누구도 변화를 늦추거나 멈출 수 없다. p153 인쇄된 글들을 앞에 두고 몹시 영민하게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을 짚어내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들 앞에서 생각 없이 해온 말들을 되감기했다. 그들이 통과하는 시절은 내.. 2021. 7. 23. 풍성한 책방 : 다독임 오은 277 난다 p27 단골이 되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닐까. 특정 메뉴를 좋아한 것을 뛰어넘어 그 집의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마음에 담는 일, 밥을 먹는 동안만큼은 기꺼이 그 집의 식구(食口)가 되는 일. p35 사진이 남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마음에 먼저 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p71 씀씀이가 과하면 지갑이 비고 말이 과하면 실수를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듯, 마음 또한 상대에게 너무 많이 주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마음이 과하면 주는 사람도, 그것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마음에 무게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p107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수록 질문 역시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묻는 것이 두려워질수록 삶은.. 2021. 7. 9. 풍성한 책방 : 고양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프레데리크 에브라르·루이벨 253 다른세상 p22 아르지롤의 털은 몹시 부드러웠다. 고양이가 오히려 나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셈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위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p60 지하실의 희미한 불빛 때문에 크기와 형태를 쉽게 가늠하기 힘들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 고양이가 다리 하나를 허리춤에 얹고 있었다고 말하면 독자들은 아마 믿지 못할 것이다. 못 믿는 게 당연하다. p155 운명은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불현듯 나타나 우리에게 크고 작은 고민거리를 안겨 주거나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기도 한다. 어쨌든 내가 그 순간 들이쉬는 공기는 참으로 부드러웠다. 뒷표지 우리는 매일 고양이에게 새로운 것을 배운다. 다른 사람.. 2021. 6. 18. 풍성한 책방 : 말하다 김영하 249 문학동네 1부 내면을 지켜라 p59 언어는 논리의 산물이어서 제아무리 복잡한 심경도 언어 고유의 논리에 따라, 즉 말이 되도록 적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좀 더 강해지고 마음속의 공포가 그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힘을 잃습니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가 가진 자기해방의 힘입니다.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편견, 나약함과 비겁과 맞서는 힘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2부 예술가로 살아라 p125 소설이라는 것은 막대기 하나 달랑 들고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숲에서 벌집을 발견하고 군침을 흘리는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그 벌집에 신묘한 약효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삶아 먹는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3부 엉.. 2021. 4. 16. 풍성한 책방 : 보다 파도 같은 세상에 내가 보는 것은 얼마 만큼일까 김영하 210 문학동네 p44 숙련 노동자가 비숙련 노동자로 대체되고 비숙련 노동자는 기계로 다시 대체되는 현상은 이제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일본의 한 작가가 쓴 소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공장에서 반복작업을 하던 젊은이가 작업현장에 로봇이 도입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이해가 안 되네. 로봇은 고장나면 큰돈을 들여 고쳐야 하지만 나는 다쳐도 좀 쉬면 그냥 낫는데…… 게다가 건강보험도 들어 있어 치료비도 거의 안 드는데, 웬만하면 값도 싼 나를 그냥 쓰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은데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 비숙련 노동자는 간단하게 로봇이나 기계로 대체되고 때로는 로봇만한 대접도 못 받는 게 현실이다. p93 노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 2021. 4. 2. 풍성한 책방 : 한 줄도 좋다, 그 동요 노경실 192 테오리아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기찻길 옆 p43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아가는 방바닥은 물론 집 안벽이 웅웅 흔들릴 정도로 요란한 기차 바퀴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듯 얼마나 많이 놀랐는지 모른다. 짐작조차 되지 않는 굉음의 주인공을 상상하다가 공포와 두려움에 얼굴이 파래지도록 울었다. 하지만 몇 번 눈물이 귓속으로 조르르 흘러 들어갈 정도로 울고 나서는 알았다. ‘아, 저 소리 괴물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구나.’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달 p66 개미는 개미를 낳는다. 메타세쿼이아는 채송화가 된 적이 없고, 호랑이가 토끼 새끼를 낳은 적도 없다. 자기 자리에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내 자리의 감사.. 2021. 3. 26. 풍성한 책방 : 이것이 좋아 저것이 싫어 눈치 보지 않고 싫다고 말하는 행복 사노 요코 280 마음산책 p94 만약 인생의 위기를 마주친다면 죽은 척을 합시다. 그 어떤 불행이라도 한순간 눈을 돌릴 때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끈질긴 불행이라도 방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한순간에 미끈미끈 달아나 살아남읍시다. p224 청춘이란 무엇이었나, 그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우왕좌왕 두리번두리번하는 것이었다. 우울해하기도 하고, 경쟁심 강하고 건방져지기도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단정적으로 이 세상을 내리치기도 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잘난 듯이 문고본을 탐독하며 어두운 얼굴로 심각한 척도 하는 것인데, p261 고양이가 가엾어진다. 자신이 집들 비울 때도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사람은 구원받는다. 존재하기만 해도, 그저 있기만 해도 좋.. 2021. 1. 29. 풍성한 책방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러나 누군가 공감을 해주면 서럽지는 않을 것이다. 박준 191 난다 들어서며 1부 2부 3부 4부 구성된 산문 집니다. 자서전적 내용이 많아서 읽는 내내 아린 마음을 가졌다. 제목들이 주는 여운을 적어본다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기다리는 일, 기억하는 일 희고 마른 빛 내가 좋아지는 시간 알맞은 시절 극약과 극독 불친절한 노동 p141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는 평소 잘 들어오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불행하고 .. 2020. 12. 1. 풍성한 책방 :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버거 111 열화당 p7 자화상 모국어는 한 인간의 첫 번째 언어,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입을 통해 처음 듣게 되는 언어다. 그래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내가 묘사하려는 언어라는 생명체가 분명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아마 음성적 자궁이 있을 것이다. p13 로자를 위한 선물 당신은 종종 내가 읽고 있는 글에 등장하고, 또 가끔은 내가 써 보려고 애쓰는 글에도 등장합니다. 그렇게 당신은 머리를 살짝 기울인 채 미소를 지으며 나의 작업에 동참하지요 그 어떤 책도 혹은 반복적으로 당신을 가두었던 감방들도 당신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p25 당돌함 고아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와 함께 어떤 특별한 기술도 익히게 된다. 그는 혼자 살아가는 프리랜서.. 2020. 11. 2. 풍성한 책방 : 친구에게 이해인 71 샘터사 겉표지 뒷면 서로에게 거리를 둔 지금은, 어느 때보다 우정과 사랑을 전해야 할 때 너와 나의 추억이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을 발한다 해도 오늘의 내겐 오늘의 네 소식이 가장 궁금하고 소중할 뿐이구나, 친구야. 2020. 10. 26. 이전 1 2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