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소설107 풍성한 책방 : 좀머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125 열린책들 p42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그 사람은 밀폐 공포증이 있다니까요. 그것 말고는 아무 병에도 안 걸렸고, 그 병에는 약도 없어요.」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내 머리에는 그 길고 이상한 단어가 한참 동안이나 떠날 줄을 몰랐다. 밀폐 공포증……, 나는 그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되풀이 하면서 외웠다. 밀폐 공포증…… 밀폐 공포증…… 좀머아저씨는 밀폐 공포증이 있어…… 그 말의 뜻은 아저씨가 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 ……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은 밖에서 돌아다녀야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p60 풀 사이로 바람 한 줄기도 불지 않았다. 풍경이 마치 그대로 굳어 버린 것 같았다. 그때 조금씩 움직이는 작은 점이 눈에 띄었다. 그 점은 숲 가장자리 맨 왼.. 2020. 10. 30. 풍성한 책방 : 기도의 막이 내릴 때 빈틈없는 이야기의 전개 쉼없이 읽어내려가는 책 히가시노 게이고 482 재인 p14 그날은 낮부터 눈발이 날렸다. 눈이 쌓이면 사람들도 나다니기 힘든데, 하며 야스요는 유리코가 걱정스러운 전화를 해 보았다. 그런데 벨이 아무리 울려도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순간 불안감이 밀려왔다. 야스요는 모자 달린 다운재킷을 입고 부츠를 신은 다음 집을 나섰다. 그때까지 유리코는 하기노마치의 아파트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 2층 건물에 여덟 세대가 들어 있는 아파트였다. 유리코가 사는 2층 맨 안쪽 집 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다. p76 무대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두 남녀, 색주가 여자 하쓰와 간장 가게 점원 도쿠베가 동반 자살하는 장면이었다. 다만 이번 연극에서는 이 장면이 한 인.. 2020. 10. 29. 풍성한 책방 : 이반 데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223 민음사 p38 화공이 슈호프의 겉옷 위에 〈췌-854〉라고 번호를 새로 써준다. 슈호프는 앞섶을 여밀 새도 없이 허리띠로 쓰이는 노끈을 들고 자기 반원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금세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슈호프는 자기 반원인 체자리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도 파이프에 담은 것이 아니라 궐련을 피우고 있다. 그렇다면, 한 모금 얻어 피울 수도 있다. 그러나 슈호프는 직접 청하지는 못하고, 그의 옆에 바짝 다가서서 약간 등을 돌리고는 곁눈질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 p95 이제, 죽을 먹는 이 순간부터는 온 신경을 먹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얇은 그릇의 밑바닥을 싹싹 긁어서 조심스럽게 입속에 넣은 다음, 혀를 굴려서 조심스레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어.. 2020. 10. 28. 풍성한 책방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331 황금가지 p 127 아침 식사 후 에밀리 브렌트는 베라 클라이슨에게 언덕 위로 올라가서 보트가 오는지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베라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바람이 거세지고 있었다. 수면 위로 자그마한 하얀 물마루들이 나타났다. 나와 있는 고기잡이배도 보이지 않았고, 모터보트가 오는 기척도 없었다. 스티컬헤이번 마을은 보이지 않고 다만 그 위로 솟은 언덕만이 눈에 들어왔다. 튀어나온 붉은 바위 하나가 작은 만을 가리고 있었다. 에밀리 브렌트가 말했다. “어제 우리를 데려다준 남자는 믿을 만한 사람인 것 같던데. 오늘 아침 이렇게 늦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베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더 커져가는 공포와 싸우고 있었다. 그녀는 화가 나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 2020. 10. 26. 풍성한 책방 : 혈통 파트릭 모디아노 142 문학동네 p19 한참 후에야 아버지가 그 시절에 몇몇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얼마 후 어떤 사람들의 회고담 속에 그런 이름들이 나오면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이름이란 결국 그 이름을 지닌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마치 아득히 멀리 떨어진 별들처럼 우리의 상상 속에 빛나는 법이다. p55 1957~1958년 그 기간에 아버지의 또 다른 하수인인 자크 샤티용이라는 사람이 모습을 보인다. 나 한테 보내 편지에서 그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썼다. “네 아버지가 외롭게 죽는다 해도 절망하지 마라. 고독을 싫어하지 않는 분이니까. 네 아버지는 상상력이 –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로지 사업으로만 쏠린 – 무척 풍부한 양반인 데다, 그런.. 2020. 10. 26. 풍성한 책방 : 현남오빠에게 283 다산책방 p19 현남오빠에게 조남주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술자리는 급히 마무리되었고 그래도 오빠는 택시가 지은이네 먼저 들러 내려주도록 하고 저를 기숙사에 데려다주었죠. 지은이가 내기고 난 택시 안에서 오빠는 지은이가 좀 당돌한 것 같다고 했다가 버릇없는 것 같다고 했다가 싸가지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 듣기 좀 그랬어요. 그래도 제 친군데 싸기지 없다니. p52 당신의 평화 최은영 유진은 버스 차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봤다. 화장은 들뜨고 머리칼은 부스스했다. 유진은 전화기를 귀에서 떼고 정순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길고 어려운 하루였다. 서른 중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져서 예전에는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던 일들에 쉽게 치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눈물이 잘 나도지 않았고 팔다리가.. 2020. 10. 26. 풍성한 책방 : 가면산장 살인사건 미루어짐작한 살인, 확인하고 싶은 살인 히가시노 게이고 336 도서출판 재인 제1막 무대 p18 현관문은 묵직한 나무 문이다. 무심코 문 위쪽을 바라보던 다카유키는 어, 하며 조금 놀랐다. 문 위로 벽에 나무로 만든 가면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거치 조각에 색도 칠하지 않은 단순한 것이지만 치켜뜬 눈과 옆으로 찢어진 입이 묘한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도모미의 부모님이 외국에 갔다가 기념품으로 사 온 부적 같은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아버지가 가끔 이상한 물건을 사들인다고 도모미가 투덜거렸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가면이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다카유키는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무언가를 모를 불길한 예감이 그의 가슴을 스쳤다. 물론 그것은 아무 근거도 없는 예감이었다. 제2막 침입자 p83.. 2020. 10. 26. 이전 1 ··· 8 9 10 11 다음 728x90 반응형